도시라는 하나의 공간이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그리고 오는 8월 개봉을 앞둔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가 바로 그런 영화들. 너무나 익히 알고있던 여행지 혹은 그저 그런 일상을 함께하는 공간이라 전혀 새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들 속에서 도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벌어지는 시간을 초월한 로맨스. 에펠 탑, 세느 강, 루브르 박물관 등 세기의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파리의 세계적인 명소들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관객들에게 실제 파리의 밤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시대를 초월하며 파리의 오늘과 옛 모습을 담아내며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든다.

직업도 애인도 없이 서른을 넘긴 노처녀 희수가 헤어진 남자 친구 병운을 만나 엉뚱한 하루를 보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면에서 ‘최악의 하루’와 닮았지만 제목부터 상반되는 ‘멋진 하루’는 서울의 소소한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주목한다. 이 영화에서 서울은 햇살이 들어오는 지하철과 잠수교, 어느 골목의 작은 밥집 등 수많은 이의 손때가 탄, 추억의 장소를 보여주며 주인공들의 기억을 반추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최악의 하루’는 최선을 다했지만 최악의 상황에 빠져버린 여주인공 은희와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들의 하루 동안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하루를 담아내는 ‘최악의 하루’는 같은 서울이지만 ‘멋진 하루’의 서울과는 다른 풍경이다.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언제나 접하던 서울은 자동차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지만 ‘최악의 하루’에 등장하는 서울은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여태껏 몰랐던 서울의 이면을 그려내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상상할 수 없는 조용한 골목들, 도심 빌딩을 뒤로 한 한옥집들과 공원이 있는 서촌의 서정적인 풍경들을 김종관 감독은 감성적인 정서로 녹여낸다.

여기에 도심 속에서 보기 어려운 푸른 녹음이 우거진 남산의 산책로는 늦여름 로맨스가 지닌 미묘하고 애틋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일상의 풍경을 설렘의 풍경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폴라로이드 작동법’ ‘조금만 더 가까이’ 등 전작을 통해 감각적인 영상미와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종관 감독의 장기가 더욱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서울의 숨겨진 환상과 낭만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최악의 하루’는 오는 8월 개봉, 김종관 감독의 오랜 팬들은 물론 늦여름 로맨스 영화를 기다렸던 관객들에게 미묘하고 애틋한 떨림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