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한국역도에 윤진희가 뿌린 희망의 씨앗

입력 2016-08-08 13: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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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희(30·경북개발공사).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역도 여자 53㎏급 합계 199㎏으로 동
-4살 연하 남편 원정식과 ‘부부 역사’
-“하늘이 선물을 준 것”이라며 눈시울

“글쎄요. 이번 대회는 내일을 위한 준비, ‘징검다리’로 보면 될 겁니다.”

온통 우울해 보였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가장 먼저 올림픽 메달(김성집·1948년 런던)을 안겨준 역도 종목이지만,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거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전병관~이배영~장미란 등 세계 정상급 남녀 역사들을 꾸준히 배출해 역도강국의 위상을 떨쳤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어두웠다.

올림픽 역도는 남자 8체급, 여자 7체급으로 분류되는데,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은 고작 7장(남자4·여자3)의 쿼터를 획득했을 뿐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만 해도 특정국가가 얻을 수 있는 최대치(10장)의 출전권을 땄기에 아쉬움은 훨씬 컸다. 여기에 유일하게 메달권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사재혁(31)은 후배를 폭행해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국내 체육계가 ‘10(예상 금메달 수)-10(예상 종합순위)’을 리우올림픽 목표로 설정했을 때도 역도는 메달 후보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대다수 역도인들 역시 “올림픽 메달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사들의 역사는 계속됐다. ‘주부 역사’로 알려진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가 그 주인공이다.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센트루 파빌리온에서 펼쳐진 역도 여자 53㎏급에서 인상 88㎏, 용상 111㎏, 합계 199㎏으로 3위에 올랐다. 불과 1㎏ 차이로 4위가 될 뻔했지만, 리야준(중국)의 실격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상 1위에 오른 리야준은 용상에서 3차 시기까지 모두 실패하며 실격돼 윤진희에게 동메달이 돌아갔다.

수많은 경험을 지닌 윤진희였지만, 리우올림픽은 아주 특별했다. 2008년 베이징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그녀는 2012년 현역을 떠났다가 지난해 복귀했다. 역도 후배 원정식(26·고양시청)의 아내로서, 두 살 터울 두 딸의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보내던 윤진희는 남편의 제안을 뿌리치지 않았다. 지루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기꺼이 이겨냈다. 누구보다 열심히, 또 당당히 훈련한 결과 올림픽 2번째 메달을 얻었다.

역도대표팀 윤석천 감독은 리우올림픽을 2020도쿄올림픽을 위한 무대로 삼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5~6월 약 3주에 걸쳐 미국 전지훈련을 했을 때 국가대표 1·2진 21명(남자11·여자10)을 전부 데려간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위기의 한국역도를 다시 세우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베테랑이었다. 특히 윤진희는 아픈 어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를 악물었고 버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가장 간절할 때 하늘이 도왔다. 자칫 소득 없이 거쳐 지나갈 듯했던 한국역도의 리우올림픽이 금메달 못지않은 감동을 안겨준 윤진희의 동메달 덕분에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하늘이 선물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힌 윤진희가 새 출발을 다짐하는 한국역도에 조그만 미래의 씨앗 한 알을 뿌려줬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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