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뭍으로 간 섬, 그곳에 삶의 소망이…

입력 2016-08-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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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마을 동백섬은 하늘나라 선남선녀가 밀어 이 자리에 갖다 놓은 것이라 전해진다. 본래 바다 위에 있던 섬은 간척사업으로 현재는 땅 위에 서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전남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마을 동백섬은 하늘나라 선남선녀가 밀어 이 자리에 갖다 놓은 것이라 전해진다. 본래 바다 위에 있던 섬은 간척사업으로 현재는 땅 위에 서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0. 대서면 화산리 귀산마을 동백섬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격주 연재한다.


간척사업으로 땅위에 선 동백섬엔
옥황상제·용왕이 밀어줬다는 일화
풍요의 섬, 지금은 개발 위기 씁쓸



전남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마을의 동백섬은 넓게 펼쳐진 논 한 가운데 거대한 왕릉처럼 솟아있는 산봉우리다. 섬이란 모름지기 바다 위에 떠있어야 함에도 동백섬은 육지에 솟아 있다. 한반도 남쪽바다 곳곳의 동백섬들은 동백이 많아 붙여진 이름일진대, 고흥의 동백섬은 민둥산에 가깝다. 사연이 많아 보였다.

고흥의 동백섬도 원래는 물 위의 섬이었다. 오래 전 간척사업으로 동백섬을 싸고 있던 바다가 육지가 되면서 땅 위에 서게 됐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뭍에 오른 동백섬은 실제로도 뭍으로 갈 운명이었다. 동백섬은 애초 남해 먼 바다에 있었지만, 하늘나라 선남선녀가 밀어 이 자리에 갖다 놓은 것이라 전해진다.

아주 먼 옛날, 남해 앞바다에서 득량만을 따라 용등만을 거쳐 송림만으로 젊은 남녀가 나체로 둥근 모양의 두 섬을 밀고 왔다. 대서면 화산리 귀산마을에 다다를 무렵, 한여름에 밭을 매던 부녀자들이 벌거벗은 젊은 남녀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깜짝 놀란 남자는 인근 장선마을 쪽으로 가서 섬을 두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는 그대로 밀고 올라와 지금 위치에 뒀다.

그리고 여자는 “이 섬이 놓이게 되면 봉두산 아래 소도읍지가 생길 것이었다. 우리는 하늘나라 선남선녀로, 옥황상제의 명과 용왕상제의 부탁으로 섬을 밀고 왔으나 아낙네들이 소리를 치는 바람에 허사가 되었다”면서 사라졌다. 동백섬 정상에 샘물이 솟아나고 ‘금복개’(금으로 만든 덮개)가 띄워져 있었지만, 어느 날 금복개를 도둑맞아 그 후 샘이 말라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우리는 그리 들었지. 근데 우리 아래 세대는 이 이야기를 알런가.”

귀산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마친 동네 부녀자들 사이에서 전안자(77)씨가 동백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이름처럼 동백섬은 동백나무로 빽빽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베어졌고, 동백나무 몇 그루만이 여름 햇살에 맞서고 있다. 아카시아나무도 잘려 나갔고, 연초록 어린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나고 있다. 섬에 어떤 변고를 짐작케 하는 흔적이다.

몇 해 전, 인근 도시의 젊은 사람이 동백섬을 사들였다. 그리고 작년 봄 나무를 베어냈다. 산을 깎아낼 거란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뭉쳤다. 면사무소를 찾아가고 주인에게 “산을 없애면 안 된다”고 말렸다. 동백섬의 주인은 결국 흙을 파내다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동백섬을 특별히 여긴다. 구렁이가 많고 돌이 많은 동백섬은 부동산으로서 가치는 낮을지라도, 마을 사람들에겐 마을을 풍요롭게 하는 영산(靈山)이다.

“지금은 보잘 것 없는 모양이고 험상해졌지만, 예전엔 나무도 울창했고 진짜 섬 같았다. 저 섬은 우리 마을이 안고 있는 밥상 같은 것이다. 예전부터 어른들은 ‘섬이 없어지면 마을에 해롭다’고 했다.”

마을회관에서 한낮의 햇볕을 피하던 마을 주민 김경희(69)씨는 동백섬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동백섬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면, 마을 사람들의 미소가 향하는 곳도 사라질 것이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전남)|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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