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남자레슬링대표 김현우.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선수도 감독도 통곡…맘 다잡고 감동 선물
“선생님, 혹시 제가 꼭 뛰어야 하나요?”
김현우(28·삼성생명·사진)가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패한 뒤 안한봉(48) 감독과 박치호(44) 코치(이상 그레코로만형 담당)에게 건넨 첫 마디였습니다.
흰색 대형수건으로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선수대기실로 향하는 제자를 지켜본 코칭스태프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대회 레슬링 심판위원장도 “미흡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고 인정한 오심에 거칠게 항의하다 그들 또한 대회 진행요원들에게 AD카드(신분 식별카드)를 빼앗기고 퇴장당한 터였습니다. 패자부활전에 나서야 할 제자가 안쓰럽고 가여웠지만, 더욱 쓰라렸던 것은 김현우의 남은 시간을 옆에서 독려하며 함께 호흡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정말 뛰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자. 아무리 이상한 상황으로 괴롭혀도 보란 듯 네 실력을 증명하자”는 안 감독의 말에 김현우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점심식사도 거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 다시 매트에 오른 모습은 여전히 세계챔피언다웠습니다. 꽉 다문 입술, 움켜쥔 주먹에서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전사의 기개가 엿보였습니다.
패자부활 1차전에서 만난 중국선수도, 동메달을 놓고 최종전에서 겨룬 크로아티아선수도 독기를 잔뜩 품은 김현우의 마지막 전진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벤치에 앉을 수 없는 안 감독을 대신해 김현우와 함께 해준 이는 자유형 박장순(48) 감독과 앞서 그레코로만형 59kg급에서 탈락한 이정백(30·삼성생명)이었습니다.
아마 상상도 못할 겁니다. 4년이란 긴 시간을 준비해놓고도 극히 짧은 시간에 운명이 결정되는 참담한 심경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라면 그렇게 억울한 일을 겪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순 없을 겁니다. 더욱이 팔까지 빠지는 부상을 당하고도요. 또 자신의 아픔은 잊고 매트에 나와 후배의 뭉친 근육을 풀어준 선배(이정백)의 의연한 태도는 어떻고요. 그간 말 많고 탈 많은 모습을 보여준 한국레슬링이지만, 적어도 리우올림픽에선 아름다움을 넘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