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이범수, 엔터테인먼트 CEO로 변신한 이유

입력 2016-08-26 17:2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매번 참여하는 작품 자체 하나하나가 여행 같아요. 추운 지방, 더운 지방이 있는 반면에 휴양지나 고생길 여행도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늘 연기는 새로움의 연속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아무리 힘든 여행이라 해도 항상 스스로 재밌다 생각하니 매진할 수 있는 거죠”

배우 이범수는 차분하고 진중했다. 모든 질문에 신중하게 대답하는 모습 속에서 진실성이 묻어났다. 27년 간 배우로서 긴 여정 중인 이범수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또 하나의 여행을 잘 마무리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의 역사를 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숨겨진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배우 리암니슨과 이정재, 진세연, 정준호 등이 출연한 가운데 이범수도 힘을 보탰다.

“6.25 전쟁 역사의 한 사건을 소재로 하다 보니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고민이 많았어요. 가장 힘든 부분은 림계진의 입장에 깊숙이 서야한다는 거죠. 공산주의의 사상들이 설득력 있게 전달돼야 하는데 생소한 경험이었어요.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것만으로 끝나면 제대로 된 표현이 어려우니까요.”


이범수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민군 림계진으로 분해 냉혹한 악역 연기를 펼쳤다. 극중 남한 측 이정재와 함께 대립각을 세우며 영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이정재 씨는 일단 너무 반가웠죠. ‘태양은 없다’ 3류 깡패, ‘오브라더스’ 이상한 동생, 이번엔 또 인민군 악역으로 만났죠. 새로운 작품에서 다른 역으로 만나서 기대가 됐어요. 단지 북한군, 남한군을 따로 찍으니까 접점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여러 배우와 작품을 한다는 것은 마치 나무테가 짙어가듯 끈끈해지고 진득해지더라고요.”

작품 자체가 전쟁 장르다 보니 고된 액션은 물론 육체적인 고통도 뒤따랐다. 이범수는 무릎 부상을 당한 가운데서도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잘 소화했다. 이 같은 노력은 이범수를 2016년 여름 극장가 700만 돌파를 앞둔 배우로 만들었다.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워낙 여름 극장가에 너무 매력적인 강적들이 많잖아요. 솔직히 손익분기점은 최소한 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막상 시사회를 보니 영화가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개봉 이후에 5, 600만 돌파 때는 마냥 신나고 기뻤어요. 하지만 700만을 넘는다면 오히려 차분해질 것 같아요. 배우, 스태프, 감독 모두 엄청 고생했으니까요. 그러한 노고를 보상 받는다고 생각하니 더욱 감사해요.”


이범수의 이번 작품 흥행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 이범수는 지금까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태양은 없다'(1998), '싱글즈'(2003), '외과의사 봉달희'(2007), '온에어'(2008), '자이언트'(2010), '신의 한수'(2014), '라스트'(2015) 등 6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매 작품마다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때마다 달라요. 기획적으로 흥미가 있는 것, 캐릭터가 재미있는 것 등이 선정 기준이 돼요. 근데 과거에는 몰랐는데 좋은 영화라고 다 흥행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웃음) 요즘에 들어서야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축구로 따지면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즐기면서 하게 됐다고 할까요. 그래서 앞으로 제 자신이 기대돼요.”

그렇다고 27년간 배우로 살면서 탄탄대로의 길만 걷진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나 슬럼프도 있었지만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일념하나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섰다.
“‘이렇게까지 해야지’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나 연기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의지를 갖고 꾸준히 시도하고 도전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근래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일 당장 배우를 못하더라도 웃으며 손 흔들고 작별할 수 있다고요. 그만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매 작품마다 임했기 때문에 당장 연기를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이범수는 배우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사의 수장으로 활약 중이다. 현재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테스피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범수는 신인 배우 발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배우 양성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사와의 합작 프로젝트을 준비 중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배우,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려는 비전도 제시했다.

“가요계에선 거대 소속사 시스템과 조직이 있어서 발굴과 투자가 선순환 되잖아요. 근데 배우 쪽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부족해 보여요. 매해마다 배우들을 기수별로 뽑고 좋은 배우 양성을 위해 과감한 투자도 하려고요. 배우는 뭘 하는 건지 제게 알려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저 역시 맨 주먹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똑같은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어요.”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테스피스엔터테인먼트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