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감독의 ‘스마일야구’, 어디까지 진격할까

입력 2016-09-0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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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감독의 스마일야구가 한국여자대표팀에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선수들을 향해 ‘재밌게 하자’라고 외치는 노(老)감독의 한 마디 말에 선수들은 쿠바전 역전승으로 화답했다. 4일 쿠바에 4-3 역전승을 거두고 기뻐하는 선수들. 기장(부산)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무명의 한국여자야구대표팀이 역사를 이뤘다. 여자야구 최강국들이 총출동하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여자야구월드컵이라는 최고 무대에서 사상 첫 슈퍼라운드(2라운드) 진출을 해낸 것이다. 4일 쿠바전 승리는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 창립 이래 최대의 사건이었다. 당초 ‘안 될 것’이라는 주변의 편견을 깨고, 대표팀은 객관적 전력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부산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에서 일어난 기적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자야구대표팀 이광환 감독. 기장(부산)|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여심(女心) 잡은 이광환 감독의 ‘스마일야구’

이광환 감독은 평소 ‘여자’보다 ‘여성’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여성 고유의 섬세함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가르치려는 생각이 강한 지도자다. 대표팀의 운명이 걸렸던 4일 쿠바전에서도 석연찮은 판정 탓에 먼저 2점을 내줬다. 이때 이 감독은 초조할 법한 코치들을 향해 “주문 많이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의기소침할 선수들을 따로 모아서는 “스마일야구 하자”고 분위기를 풀어줬다. 긴장해서 몸까지 굳어졌던 선수들은 마법처럼 이닝 후반 호수비를 거듭 보여줬다. 그리고 6회 단 한번의 찬스에서 4-3 역전을 해냈다. 경기 후 만난 이 감독은 “선수들이 예뻐 죽겠다. 예쁘게 잘해서 감독이 할 게 없었다”고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국제적으로 홀대받고 초청도 못 받았는데 이제 세계여자야구가 우리를 괄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 감독의 토로 속에서, 이 힘든 여자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지 못한 책임감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여자야구대표팀 곽대이. 기장(부산)|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주장 곽대이가 말하는 여자야구와 소프트볼의 의기투합

한국여자야구의 산증인이라 할 주장 곽대이(포수)는 쿠바전 승리 이후 “작품 하나 만들었다”며 그동안의 고생이 담긴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가장 우려됐던 여자야구와 소프트볼 선수들의 호흡에 대해 곽대이는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 대회 준비 2개월 동안 만날 때마다 야구 쪽에 언니들이 더 많아 (소프트볼 선수들을)스스럼없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아이스 브레이킹(서먹함을 깨는 대화법)’도 많이 했는데, 이 친구들도 스포츠맨들이라 잘 따라와 줬다. 같은 스포츠맨으로서 이기고자하는 마음으로 뭉쳤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 성적을 내야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일념 하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최대고비였던 쿠바전, 한때 1-3까지 밀린 순간, 곽대이는 선수들을 향해 “재밌게 하자”라고 외치며 웃었다. 나머지 선수들도 미소로 화답했다. 곽대이는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몸이 무거워지더라. 우리 팀은 웃으며 야구할 때 안타가 나오는 팀”이라고 말했다. ‘명랑’이 여자야구대표팀의 비공식 캐치프레이즈다. 이미 목표를 이룬 대표팀의 ‘스마일야구’가 어디까지 갈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기장(부산)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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