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에게 ‘버리는 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입력 2016-09-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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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투수들은 끊임없이 구종을 개발하려 노력한다. 무려 6개의 구종을 원하는 코스에 던지는 가네코 치히로(오릭스) 같은 투수가 있는 반면 직구와 슬라이더, 또는 직구와 체인지업 등의 2가지 구종으로만 승부하는 투수도 부지기수다. 후자의 경우 제2, 제3의 변화구를 던질 수는 있지만, 사실상 봉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구종을 ‘버리는 공’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볼카운트 0B2S에서 의미 없이 소비하는 ‘버리는 공’과는 다른 의미다. 한 투수는 “어설프게 던지다가 맞으면 그만큼 더 큰 후회가 남기 때문에 던지기 꺼려진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잘 던지지 않는 공’을 ‘버리는 공’이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단순히 그 공을 보여주는 자체로 상대 타자의 노림수를 복잡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익숙하지 않은 변화구를 많이 던지라”고 주문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넥센 염경엽 감독도 올 시즌 토종 에이스로 성장한 신재영에게 “살아남기 위해 체인지업을 많이 던져보라”고 강조한다. 신재영의 주무기는 직구와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다.

넥센 김세현-LG 우규민-kt 정대현(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넥센 마무리투수 김세현도 좋은 예다. 8월4일 사직 롯데전에서 서클체인지업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세이브를 챙겼다. 시속 150㎞가 넘는 빠른 공과 종으로 휘는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는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서클체인지업으로 당시 상대 타자였던 나경민과 수싸움에서 이겼다. 16일 잠실 KIA전에서 승리를 따낸 LG 우규민도 기존에 잘 던지지 않던 슬라이더를 19개나 던져 효과를 봤다. 당시 우규민은 “한 번 잘 통했다고 자주 던지진 않겠지만, 보여줬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타자들이 노림수를 가져가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완급조절을 통해 2가지 종류의 커브를 던지는 정대현(kt)도 기존에는 직구와 체인지업만 구사하던 투수다. 2015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배운 커브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고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단계다.

한화 투수코치를 맡았던 MBC스포츠+ 정민철 해설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발상의 전환으로 의표를 찌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며 “상대 타자가 투수의 구종이 2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저것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투수가 회복 가능한 볼카운트에서 제2, 제3의 구종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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