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정도원 “오스카 남우주연상 꿈꾸면, 안되나요?”

입력 2016-11-0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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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도원. 사진제공|월메이드 예당

남들보다 속도가 조금 느린 배우도 있다.

데뷔하자마자 성공가도를 달리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력을 쌓아 서서히 빛을 내는 배우도 있다. 정도원(36)은 후자에 속한다.

정도원이라는 이름도, 그의 얼굴도 아직은 낯설다. 출연한 영화가 10편을 훌쩍 넘기지만 관객의 시선을 끌 만한 배역을 맡은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사 몇 마디 거드는 조연, 그도 아니면 단역이었다.

최근에야 그의 이름이 영화계에 퍼지고 있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 볼 수도 있다. 740만 명이 본 영화 ‘밀정’의 영향이다.

아직도 정도원이 누군지 모른다면 ‘밀정’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엄태구가 연기한 일본경찰 하시모토로부터 뺨을 맞는 또 다른 일본경찰 우마에. 분노에 찬 엄태구가 쉼 없이 뺨을 치는데도 한 마디 대꾸도 없이 그 폭력을 온전히 받아낸 우마에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정도원이다. ‘밀정’을 본 관객이 가장 많이 꺼낸 말 가운데 하나는 ‘뺨 맞은 그 배우 누구냐’는 질문이다.


● 영화 ‘아저씨’로 데뷔…오히려 내리막길

정도원은 연기자의 꿈을 이루기까지 총 세 곳의 대학교를 거쳤다. 나름 주목받으면서 스크린에 데뷔했지만 그 운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한 번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유훈으로 그 역시 한의사가 돼야 하는 줄 알았던 학창시절, 정도원은 전교 1등까지 했을 정도로 꽤 공부를 잘했다.

그렇게 처음 한약을 다루는 한약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재수 끝에 경희대 공대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은 짧다. 그는 “학교에 부적응하던 학생이었다”며 “연극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했다”고 돌이켰다.

군대에 있을 때 읽은 한 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그의 삶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배우 박광정의 이야기였다. ‘공대에 다니다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로 편입을 했다’는 내용. 그 때 정도원의 목표는 더욱 뚜렷해졌다.

“제대하자마자 편입 준비해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졸업할 때가 29살이었다. 편입 때 딱 한 명 뽑았는데 내가 됐다. 연기를 잘 했냐고? 그게 아니라 편입 영어 덕분이다. 하하! 꼭 편입하고 싶어서 매일 12시간 씩 영어공부만 했다.”

유명한 연극 연출가인 한양대 최형인 교수는 그의 은사이기도 하다. 앞서 설경구, 이영애, 김태희 등 숱한 배우들이 최 교수로부터 지도 받았다. 정도원은 칭찬보다 꾸중을 자주 들었다. 졸업 뒤 2년 간 청강까지 했지만 최 교수는 정도원에게 ‘학생 때나 졸업하고 나서도 연기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꾸중했다. 스승의 일침은 그를 더욱 자극했다고 한다.

“그 때까지도 연기는 그저 배우는 개념으로면 여겼다. 내 것을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았던 것 같다. 학생 마인드를 버리고 실전으로 나갔다. 전력투구하면서 오디션을 보고. 어차피 나는 ‘백’도 없으니까. 영화사를 다니며 프로필을 돌렸다. 멈추지 않고.”

정도원의 첫 영화는 2010년 개봉한 원빈 주연의 ‘아저씨’다. 형사 역을 맡은 그는 나름 개성강한 모습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어 영화 ‘체포왕’에도 참여했다. 대사도 꽤 있는 조연으로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 뒤로는 좀처럼 그를 찾는 영화가 없었다고 한다. 조연을 넘어 단역으로 떨어졌고, 때로는 대사 한 마디 없는 ‘이미지 단역’ 제안도 받았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을 고쳤다. “전부 경험해보자”는 결심이다.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이 ‘도원이는 자꾸 내려가네’ 그런 말도 했다.(웃음) 반감이 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 단역을 하다보니 오히려 마음에 편해졌다. 뭐든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


● “내 꿈은 할리우드”…오스카 남우주연상 꿈

‘밀정’은 그에게 적지 않은 행운을 가져다줬다. 개성 강한 모습, 가능성을 드러내면서 처음으로 매니지먼트 회사도 만났다. 그동안 혼자 일해 온 습관을 버려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 심한 몸살까지 앓았을 정도라고 한다. 고민 끝에 새로운 도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정도원은 2013년 친동생과 함께 ‘다이너마이트맨’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동생은 정혁원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대학원) 연출과정에 있다. 동생이 연출을 하고 정도원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도 초청됐다.

형제는 지금 함께 살고 있다. 영화와 연기를 꿈꾸는 형제는 함께 패스트푸드점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정도원은 “꿈이 있으니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했다.

정도원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예전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연기상을 타고 싶고, 나 혼자 남우주연상을 독차지하고 싶기도 했다. 하하! 그런 망상을 했었지. 지금은 맷 데이먼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화려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신뢰를 만드는 배우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이루고픈 최종 목표가 있다고 했다. “아카데미시상식 남우주연상”이다.

“친구들에게 이 말을 하면 ‘그냥 한국에서나 잘하라’고 핀잔을 준다. 하하! 그래도 꼭 할리우드에 가고 싶다. 넓은 곳에서 내 연기를 보이고 싶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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