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정당행위를 가장한 ‘위험한 파울’

입력 2017-02-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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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튼 시절 이청용.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이청용 인생 바꾼 英 5부선수 살인태클 등
업무로 인한 행위 간주…법적처벌 힘들어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 등은 법적처벌 가능


2011년 7월 31일 국내 축구팬들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이청용(29·크리스털 팰리스)이 잉글랜드 FA컵 경기 도중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이청용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자신의 3번째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있었다. 앞선 2시즌 동안 9골·16어시스트로 만족할 만한 활약상을 보여줬다. 그 대가로 팀(당시 볼턴)과 3년 연장 계약에도 성공했다. 빅클럽에서 영입 제의도 받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5부리그 팀과의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살인 태클’로 인해 ‘오른쪽 정강이뼈 이중 골절상’을 당했던 것이다.

이청용이 그라운드로 복귀하기까지는 9개월이 걸렸다. 그 탓인지 볼턴은 곧장 2부리그로 강등됐고, 2015∼2016시즌에는 3부리그까지 추락했다. 재정악화로 구단 존립마저 불투명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볼턴으로선 이청용의 부상이 땅을 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주축선수인 이청용이 2011∼2012시즌을 온전히 뛰었더라면 지금쯤 전혀 다른 상황을 맞았을 수도 있다.


● 살인 태클, 헤드 샷, 엘보 파울

살인 태클과 같은 상황은 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구에서 야수를 향한 주자의 슬라이딩이나 투수의 헤드 샷, 농구에서 엘보 파울은 심각한 부상을 불러올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선수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상황을 경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까?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부상 발생은 불가피하다. 특히 어느 정도의 몸싸움이 허용되는 경기에선 더욱 그렇다. 실제로 경기 도중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경우도 제법 있다. 어떤 경우에는 얼굴이 찢어져 유혈이 낭자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골절이나 인대 손상이 의심되기도 한다. 스포츠가 아니라면 과실치상죄로 처벌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경기 도중의 부상에 대해선 대체로 법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 기본적으로는 정당행위

우리 형법은 제20조에서 ‘정당행위’라는 제목 아래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법률이나 업무로 인한 행위는 범죄의 일반적 요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처벌이 면제된다. 경기 도중의 부상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업무로 인한 행위’인 것이다. 경기 도중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상에 대해선 특별히 처벌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부상까지 법이 개입하지 않을까? 그 정도는 종목에 따라 다르다. 복싱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복싱은 주먹으로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에 대한 공격이 허용된다. 따라서 뇌에 손상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챔피언에 도전하던 몇몇 선수들이 경기 도중 사망한 바 있다. 그러나 상대 선수가 처벌되진 않았다. 위험한 경기 중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눈 주위가 찢어지거나 턱이 골절되더라도 정당한 경기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 처벌이 면제되는 것이다.


● 기본을 넘어서면?

축구나 농구는 어떨까? 축구나 농구는 격투기가 아니다. 따라서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과격한 파울로 심각한 부상이나 심지어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행위가 아닌, 과격한 파울이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진 경우 법이 개입할 여지가 격투기에 비해 더 넓은 것이 당연하다.

우리 형법에서 규정하는 거의 대부분의 범죄는 ‘고의범’이다. 즉, 과실로 범죄의 결과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처벌되지 않는다. 목숨이나 신체를 침해하는 과실치사, 과실치상이 대표적이다. 축구나 농구의 반칙 규정도 기본적으로 형법과 닮아있다. 고의적 반칙에 대해 경고, 퇴장, 출장정지 등의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경기규칙은 경기장 내에서 적용되는 형법인 것이다.

경기를 하다 보면 일부러 반칙을 하기도 한다. 상대팀의 기를 꺾기 위해, 우리 팀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러나 거기에도 분명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위험한 행위를 금지한 경기규칙과 동업자 정신이 바탕이 된 배려가 바로 그것이다. 그 선을 넘어설 경우 법이 개입할 수도 있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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