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감독에게 리쉘의 챔프전 MVP가 뜻깊었던 이유

입력 2017-04-0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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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선수들은 감독이나 프런트 고위인사를 헹가래 쳐주는 관행을 깨고 외국인선수 리쉘도 들어올렸다. 리쉘의 노고를 선수들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이다. 화성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감독님께서는 항상 내게 소리를 지르시기만 했다. 점수를 매겨달라는 것은 내게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

IBK기업은행 외국인선수 매디슨 리쉘(24)은 3월30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흥국생명을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우승한 뒤 “감독님에게 점수를 줄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농담조로 이 같이 말했다. 공격과 리시브를 모두 책임져야하는 레프트로 뛰다 보니 이정철 감독의 주문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크게 혼이 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승부욕 강한 이 감독의 주문에 머리가 아플 만도 했지만, 리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기 몫을 완벽하게 해내며 팀의 3번째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IBK기업은행 리쉘. 사진제공|IBK기업은행


이 감독은 챔프전 4차전을 앞두고 “리쉘이 챔프전 MVP가 됐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기에는 사령탑의 주문을 묵묵히 실천으로 옮긴 리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리쉘은 챔프전 4게임에서 경기당 34.75득점(총 139점)을 따내는 괴력을 발휘하며 MVP가 됐다.

리쉘의 챔프전 MVP 수상은 이 감독에게도 뜻 깊은 일이다. 리쉘의 키는 184㎝로 외국인선수치곤 작은 편에 속한다. 알레나 버그스마(190㎝·KGC인삼공사), 타비 러브(197㎝·흥국생명)와 같은 화려함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이는 이 감독도 인정한 부분이다. 리쉘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 핸디캡을 보완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다. 남자선수들 못지않은 하체 근력을 자랑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배구선수들이 자주 다치는 무릎과 발목이 튼튼한 덕분에 수비 시 움직임도 안정적이다. 정규시즌 37경기에서 경기당 25.97득점(총 961점)을 올리며 37.1%의 리시브점유율(성공률 37.5%)을 기록한 것은 리쉘의 내구성을 보여준 좋은 예다.

그러나 리쉘은 정규시즌에 단 한 번도 라운드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 에피소드도 있다. 기업은행이 5라운드에서 5전승을 거둔 뒤 이 감독은 리쉘에게 “이번 라운드 MVP는 네가 받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수상자는 동료 세터 이고은이었다. 뜻하지 않게 거짓말을 한 이 감독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대놓고 리쉘의 챔프전 MVP 수상을 바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라운드 때도 내심 리쉘이 MVP를 받길 원했는데, 상 받을 기회가 정말 안 돌아왔다.” 이 감독의 회상이다.

IBK기업은행 리쉘.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리쉘의 재계약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감독은 “리쉘은 분명히 재계약 의사를 표시했다. 에이전트를 통해서 확인한 부분이다”면서도 “내년 시즌 선수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기업은행은 올 시즌이 끝나고 박정아와 김희진, 남지연, 채선아, 김사니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이들의 거취에 따라 리쉘의 재계약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리쉘은 “8개월간 쉬지 않고 뛰어서 지쳤다”며 “(재계약 문제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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