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엘린이→당찬규, LG 임찬규의 ‘다시 열린 성장판’

입력 2017-05-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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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입단해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귀여운 얼굴이 매력적이다. LG 소년팬 ‘엘린이’였던 임찬규는 팀의 새로운 선발 투수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LG 임찬규(25)는 ‘엘린이’ 출신이다. ‘엘린이’는 ‘LG 어린이 팬’의 줄임말로, 어린 시절부터 ‘야생마’ 이상훈에 매료돼 LG 팀을 좋아했고, 야구를 시작한 뒤로는 LG 입단을 꿈꿔왔다. 그리고는 2011년 당당히 1라운드(당시엔 1차지명 없이 전면드래프트를 실시하던 시절로 사실상 1차지명과 마찬가지) 지명을 받고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성장과 침체, 절망의 시기를 겪었던 그가 올 시즌 LG 선발 마운드의 5번째 기둥을 맡아 연일 쾌투를 펼치고 있다. 아직 규정이닝에는 미달됐지만 최근 3연승 행진 속에 방어율 1.34의 놀라운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다. 선발 로테이션에서 5번째 투수로 턱걸이했지만 최근의 투구 내용만큼은 에이스 못지않다.

LG팬이었던 초등학생 시절 조인성과 함께 사진찍은 임찬규(맨 왼쪽). 사진제공|임찬규



● 당찬규, 침체, 그리고 혼돈의 시기

“LG 선수가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현실로 만든 임찬규는 입단 첫해부터 피해가지 않는 정면승부를 펼치면서 ‘당찬규’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졸 신인으로 첫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65경기에 등판해 9승6패7세이브·방어율 4.46을 기록했다. 당시 암흑기에 놓여있던 LG 마운드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휘문고 시절부터 주목 받았던 그의 앞날에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이후 혼돈의 시기를 겪었다. 성장도 멈췄다. 2012년 18경기(선발 7경기)에 나서 1승5패1홀드·방어율 4.53, 2013년 17경기(선발 4경기)에 등판해 1승1패·방어율 4.70으로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2014년 경찰야구단에 입단해 군복무를 시작한 그는 그 과정에서 팔꿈치인대접합수술까지 받는 시련도 겪었다. 지난해 군복무와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15경기(선발 10경기)에 등판했지만 3승3패1홀드·방어율 6.51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신인 시절 임찬규. 사진제공|LG 트윈스



● 다시 존재감 알리는 2017년

그러나 올 시즌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5선발 자리를 낙점 받더니 6경기에 모두 선발등판해 3승1패에 1점대 방어율(1.34)의 쾌투를 펼치고 있다. 첫 등판(4월9일 사직 롯데전)에서 3.1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될 때만 해도 큰 기대감을 얻지 못했지만, 이후 5경기에서 모두 5이닝 이상을 던지며 1실점 이하로 막았다. 그 사이 무실점 3경기, 1실점 2경기가 포함돼 있다. 그러면서 3연승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4월15일 kt전 5이닝 무실점, 4월21일 KIA전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한 그는 4월27일 SK전 7이닝 무실점으로 첫 승을 따냈고, 5월3일 NC전에서 도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2연속 무실점으로 얻은 자신감과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우천으로 한 차례 등판이 걸러졌지만 14일 한화전에서 선발등판해 6이닝 1실점으로 역투하며 또 승리투수가 됐다.

LG 임찬규. 스포츠동아DB



● 믿음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감

임찬규의 투구가 더 빛나는 것은 팀이 고비에 접어들 때쯤 승리를 따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어떻게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을까. 그는 이에 대해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다. 이제 3승했는데 너무 앞서 나가면 안 된다. 갈 길이 멀다”며 웃었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가장 좋은 페이스인 것만은 그도 부인할 수 없다.

첫 패배가 약이 됐다고 했다. 그는 “사실 첫 등판 사직 롯데전에서 패전투수가 됐다. 이러다 선발 로테이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 3연전을 치르기 위해 창원을 갔는데 감독님이 직접 방으로 부르셨다. 긴장을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첫 경기라 의욕이 과했을 거다. 너를 믿는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너의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초조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힘이 났다. 고마움과 동시에 자신감과 책임감이 커졌다”고 돌이켰다.

LG 임찬규. 스포츠동아DB



● 구종과 투구패턴, 수싸움의 변화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타자를 이기기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양한 구종의 장착과 승부가 필요했다.

임찬규는 “예전엔 직구와 커브만 던지니까 타자들이 내가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면 직구만 노리더라. 난 남들처럼 시속 150㎞ 이상 던지는 강속구 투수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변화구를 모든 카운트에서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변화구를 던질 수 있어야 타자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구라는 게 생각처럼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말처럼 쉽게 이뤄지면 누구나 다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 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그는 “공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엔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은 뒤에도 공 1~2개를 유인구로 던지다 불리해지면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데 급급했다. 이젠 볼카운트가 유리해도 곧바로 승부구를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빠른 투구템포도 효과를 보고 있다. 과거엔 위기 상황이 되면 자신의 공을 믿지 못하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젠 인터벌을 최대한 짧게 잡고 포수에게 공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곧바로 던진다. 타자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자 오히려 이점이 더 많아지고 있다.

임찬규는 “직구를 최대한 낮게 던지려고 하는 것도 포인트다. 좌타자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서클체인지업을 던지지만, 우타자에게도 체인지업을 백도어처럼 구사한다. 슬라이더는 반대 방향이다. 다른 팀 친한 타자들에게 물어보니 ‘낮은 쪽 비슷한 코스에서 직구가 들어오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비슷한 코스에서 좌우로 떨어지니까 계산이 복잡해진다’고 말하더라. 여기에 커브를 던지면서 타자의 시선을 높은 쪽으로 유도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LG 임찬규. 스포츠동아DB



● 승리보다는 ‘5이닝 이상 버티는 투수’로!

자신감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달 27일 SK전과 5월3일 NC전에서 연속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것이었다. 임찬규는 “SK와 NC는 강타자들이 많다. 그런데 공격적으로 던졌는데 타자들이 잘 치지 못하더라. 그때 ‘자신 있게 던지면 내 공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후 한화도 강타자들이 많은데 좋은 투구를 했다. 자신감 있게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프로 데뷔 후 10승도 가능할 페이스다. 그러나 임찬규는 손을 내저으며 “5선발이 10승을 목표로 삼는 것도 웃기지 않느냐”면서 “승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운도 따라야한다”면서 “다만 ‘5이닝 이상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던지려고 한다. 감독님, 코치님, 동료들, 팬들에게 ‘임찬규는 5이닝 이상 던지는 투수’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로테이션 펑크 안 내고, 많은 이닝을 던지고, 많은 삼진을 잡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던 임찬규는 군대를 다녀온 뒤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다. 멈췄던 성장판도 다시 자라고 있다. 2017년 봄날, ‘당찬규’의 망설임 없는 정면승부가 시원시원하다.

LG 임찬규. 스포츠동아DB



● LG 임찬규


▲생년월일=1992년 11월 20일
▲가동초~청원중~휘문고

▲키·몸무게=185㎝·80㎏(우투우타)

▲프로 입단=2011년도 신인드래프트 LG(1라운드 전체 2순위)

▲입단 계약금=3억원

▲2017시즌 연봉=6500만원

▲통산 성적=121경기 17승 16패 7세이브 2홀드 방어율 4.48

▲2017시즌 성적=6경기 33.2이닝 3승1패 방어율 1.34

광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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