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빅뱅.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현지 케이팝차트 재가동 불구 차분
“공동투자는 위험…일회성만 생각”
최근 빅뱅의 음료 광고와 송혜교·전지현의 화장품 광고가 중국 온라인에 등장하고, 현지 음악사이트 큐큐뮤직의 케이팝 차트도 얼마 전부터 재가동됐다. 작년 7월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 촉발시킨 중국의 한한령(한류금지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완화되는 정황이 잇따르면서 한류 콘텐츠 수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케이팝 한류’를 만들어낸 가요계는 이 같은 분위기를 환영하면서도, 들뜨거나 조바심 내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한한령 이전과 같은 중국시장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기류마저 감지되고 있다.
이는 아직 한한령이 실제로 ‘해제’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중국시장이 한·중관계에 따라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지녔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중국 특유의 배타적 애국주의가 집단적 불매운동으로 표출되는 걸 피부로 느낀 까닭에 섣부른 기대감을 갖지 않는 분위기다. 한 남성 아이돌 그룹 소속사 측은 “현재 중국 투어와 행사에 관해 문의하는 한류 에이전트들이 많지만 중국 상황이 완전히 좋아질 때까지 논의 자체를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한령이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를 경직시킨 사이 케이팝 기획사들이 이미 시장다변화를 시작했다는 점도 차분한 분위기의 한 배경으로 설명된다. 한때 중국만 바라보던 기획사들이 이젠 그 의존도를 낮춰야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다른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홍콩과 대만이 이미 대체시장으로 케이팝 기획사들로부터 주목받고 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캄보디아는 케이팝의 신시장으로 꼽히고 있다. 태국의 한류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기획사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중국에서 한창 러브콜을 받던 한 걸그룹의 소속사 대표는 “중국 기업들의 자금력에 현혹됐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중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장 공략에 역점을 두고 해외투어 계획을 세워뒀다”고 말했다.
아울러 케이팝 기획사들이 중국과 장기프로젝트는 지양하고 단발성 협업을 지향하게 될 거란 전망도 많다. 사업을 한창 진행하다 다시 한한령 같은 변수를 만나게 된다면 성과는커녕 투자비용만 날리고, 그에 따라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도 커지기 때문이다.
한중합작 걸그룹 믹스의 해체는 그 명징한 사례다. 작년 5월 국내 데뷔한 5인조 믹스는 3월 중국 측 파트너사가 중국인 멤버 셋을 모두 귀국시켜버리면서 팀이 해체됐다. 믹스의 한국 소속사 차이코 엔터테인먼트 측은 “중국 측 파트너 차이코브로스가 일방적으로 파트너십을 해지하고 무단으로 중국인 멤버들을 귀국시켰다. 믹스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중국 측의 무대응과 비협조로 불가피하게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에도 한국인 멤버들을 조건 없이 계약 해지했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과 중국 기획사 간 맺었던 계약도 한한령 하에서는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중국과 거액의 투자유치를 진행하다 무산된 일을 겪은 한 중견기획사 대표도 “중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장기간 사업을 추진하려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 같다”면서 “한중합작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거나 공통투자 같은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됐다. 앞으로는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면 고려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