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서 첫 애국가 부른 남자…‘탁구 TT1’ 송신남을 아시나요

입력 2017-05-3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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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송신남(가운데). 사진제공 ㅣ 대한장애인체육회

1972년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송신남(가운데). 사진제공 ㅣ 대한장애인체육회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이 다가오며 올림픽이 끝나고 진행되는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개막 역시 3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비록 메인 올림픽에 비해서 주목받지 못하지만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선수들의 모습은 한국 스포츠 사의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

특히 올림픽 금메달보다 패럴림픽 금메달이 빨랐다는 사실을 아는 스포츠 팬은 적다. 대한민국은 1945년 주권을 되찾은 이후 꾸준히 올림픽의 문을 두드렸다. 1948년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꾸준히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노렸다.

그러나 올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까진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해방 후 30년이 지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에 출전한 양정모가 금메달을 차지하며 해방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양정모보다 4년 앞선 197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1972 하이델베르크패럴림픽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탁구 TT1(패럴림픽 종목)’에 출전한 송신남이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송신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틀어 한국인 최초 금메달리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송신남은 뒤이어 단체전 팀4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인 최초 올림픽 2관왕의 영예도 안았다.

올림픽 경기장에 최초로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한 송신남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송신남은 베트남전 참전 중 목에 총탄을 맞아 척수장애를 입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해 훨체어탁구를 시작한 송신남은 처음 참가한 패럴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로 자신의 노력을 보상받았다. 송신남은 이후 종목을 전향해 1988 서울패럴림픽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장애인체육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송신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계 패럴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나온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계 패럴림픽에서는 금메달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2002 솔트레이크 패럴림픽에서 알파인스키 한상민과 2010 벤쿠버 패럴림픽에서 휠체어컬링 대표팀이 따낸 은메달이 대회 최고 성적이다. 내년 겨울에는 과연 고대하던 동계 패럴림픽 금메달이 탄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재윤 스포츠동아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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