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는 전북현대로 통한다. 또한 전북은 최강희 감독과 동의어다. 2005년부터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온 최 감독이 29일 통산 5번째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뒤 제자 김민재(왼쪽)의 휴대폰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전주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이듬해 첫 우승 계기 승리의 DNA 축적
한팀서 제자들과 쌓은 신뢰 최고의 자산
올해 프로축구 역대 3번째 200승 위업
전북현대는 최근 10년 사이 2차례 아시아 정상(2006·2016)에 올랐고, 5차례(2009·2011·2014·2015·2017) K리그를 평정했다. 명실상부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최강 클럽이다. 세상 어떤 일이 그렇듯 과정이 없는 결실은 없다. 남들이 정체하거나 쇠퇴할 때 전북은 부지런히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모두가 투자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안일하게 생각할 때 유일하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숱한 견제와 시기, 질투에 굴하지 않고 전북은 흔들림 없이 그들만의 마스터플랜을 밑바탕 삼아 도전했고 또 성취했다. 바야흐로 지금은 전북의 전성시대다. 3회에 걸쳐 전북 왕조를 해부했다.
“오기로 버텼고, 마음을 비우기도 채우기도 하면서 반복하다보니 벌써 여기까지 왔다.” 전북현대의 위대한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최강희(58) 감독이다. 한 때는 역대 최단명 감독이 될까 걱정했다. 박항서(57) 감독과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골프를 치던 2005년 여름에 온 “팀을 맡아 달라”는 전화 한 통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백수신분의 그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걱정은 컸지만 전주로 향했다. 첫 걸음은 유쾌하지 않았다. 데뷔 시즌 2승에 그쳤다.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된 2008년은 더욱 큰 위기였다.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으로 한참 엇박자가 났다. 개막 이후 5경기에서 1무4패의 성적표에 홈 팬들이 들끓었다. 자신도 용납할 수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전북 최강희 감독. 사진제공|전북현대
시즌 후 사퇴를 결심한 뒤 구단 홈페이지에 장문의 편지를 썼다. “우린 변화의 과정이다. 좀더 믿고 지켜봐 달라”고. 다행히 팬들은 기다려줬다. 그리고 강렬한 우승 첫 키스가 2009년 찾아왔다. 이동국, 김상식(현 전북 코치)을 동반 영입한 효과가 컸다. 일단 한 번 우승을 하자 경험이 쌓였다. 승리 감각과 우승 DNA가 차츰 생겼다. 2005년, 2008년 그가 팀을 떠났다면 아마 K리그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강하고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전북의 단단함은 2008년부터 차곡차곡 축적된 산물이다. 2017시즌은 최 감독에게 감회가 깊은 시즌이었다. 30여년 프로축구 역사에 역대 3번째로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유공∼울산현대에서 210승을 기록한 김정남 감독(한국OB축구회 회장), 한일은행∼울산∼수원삼성∼대전 시티즌에서 207승을 쌓은 김호 감독만이 했던 대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것도 최단기간에. 자신을 국가대표로 키워주고(김호), 국가대표로 선발해준(김정남) 스승들과 같은 반열에 선 제자는 오직 전북만 이끌며 대기록을 썼다.
200승 달성을 앞두고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은 놓치지 않았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8일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1-0 승리와 함께 200승을 채웠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 클래식 우승 확정의 상대도 29일의 제주였다. 정확히 통산 202승째였다.
전북 최강희 감독이 K리그 통산 3번째 ‘200승 사령탑’ 반열에 올랐다. 오롯이 한 팀에서 이룬 대업이기에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10월 8일 제주 원정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뒤 메가폰을 잡고 대기록 소감을 말하는 최강희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제 전북과 최 감독은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다. 9월 20일 상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 1-2 패배를 당한 뒤 “올 시즌을 마치고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 하겠다”고 말하자 제자들이 입을 모아 반대했다. 이들은 “감독님이 떠나면 전북에 남을 이유가 없다. 구단도 사랑하지만 감독님이 없는 팀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최강희 없는 전북은 생각하기도 힘들다.
줄어든 출전시간에도 대부분이 이적을 요구하지 않았고, 묵묵히 희생을 감내했던 것은 벤치에서 선수들에게 전달된 두터운 믿음과 신뢰의 결과다. 우직하게 한 팀만을 이끌어온 스승과 그의 러브 콜을 받아들인 제자들이 꾸준하게 정을 쌓았기에 전북은 여기까지 쉼 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
전북이 통산 5번째 K리그 정상을 밟고 환호했다. 희생과 조화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품에 안고 다시 한 번 우승을 일궈냈다. 29일 우승 확정 이후 전북 선수들이 최강희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전주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최 감독은 현역시절 포항에서의 데뷔시즌(1983년)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롯이 울산현대에서만 보냈다. 코치 인생의 전부는 수원에 바쳤다. 감독은 전북에서 지냈고 그 것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항상 제자들을 자극했다. 꾸준하게 동기부여도 했다. 일방통행은 없었다. 선수들이 최대치 연봉을 받도록 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도록 구단과 싸워줬다. 꼭 데려와야 할 선수를 직접 만나는 걸 꺼리지 않는다. 믿음의 출발이다. 그러다보니 누구라도 전북 유니폼을 입으면 하나로 뭉쳤다. 볼 보이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 감독은 부임 당시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선수들에게 화풀이하지 말자. 잘못은 선생의 몫이다.” 그 약속을 지킨 결과 전북은 최 감독과 함께 8개의 트로피(FA컵 1회 포함)를 챙겼다. 꾸준한 관중몰이와 관심은 덤이다. 전북과 최 감독의 기나긴 동행, 선수들과의 신뢰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