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민병헌-손아섭-정의윤(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 방아쇠 당기는 구단이 없다
시장이 불 붙기 위해선 우선 물불 가리지 않고 FA 영입전에 참전하는 팀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해야 싸움이 시작된다. 최근 몇 년 사이(김응용~김성근 감독 시절) 한화가 그런 팀 중 하나였다. 성적에 굶주린 나머지 ‘오버페이’를 해서라도 먹잇감이 보이면 잡는 팀이 나타나야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러면 선수를 빼앗긴 구단에서 다른 FA를 영입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투수 차우찬이 LG로 가고, 4번타자 최형우가 KIA로 이적하면서 삼성이 부랴부랴 FA 시장에서 투수 우규민과 야수 이원석을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아직 뇌관이 터지지 않고 있다.
● FA 몸값 폭등, 보상금 수준도↑
최근 FA들의 치솟는 몸값도 구단들이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제 특급 FA는 한 명을 잡는 데에 4년 100억원 안팎이 든다. 롯데(5명)를 비롯해 내부 FA 계약만으로도 벅찬 구단들이 많다. 특히 선수들의 연봉 자체가 높아져 외부 FA 영입 시 보상금 규모까지 부담으로 다가온다. 확실한 목표물이 아니라면 외부에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다. 올해는 2차 드래프트도 있어 각 구단이 전력 보강을 그 이후로 미루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고 있다.
황재균-김현수(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외부 FA는 없다” 얼어붙은 그룹 분위기
올해는 각 구단 모그룹들의 분위기도 대대적 투자를 할 만큼 썩 좋지는 않다. 그래서 대부분 일찌감치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선언했다. 현재 외부 FA를 영입할 만한 구단이나,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는 구단은 LG, kt, 삼성 정도다. 이들도 대대적 투자보다는 ‘합리적 가격’을 따지며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몇몇 팀은 내부 FA를 놓칠 경우 외부 FA 영입에 뛰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일단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 구매욕 당기게 하는 특급투수가 없다
선발 마운드 한 축을 담당하거나 불펜 핵심자원이 되는 투수는 FA 시장의 전통적 인기 상품이다. 타고투저로 흐르는 KBO리그 실정상 가장 구매욕을 자극하는 포지션이다. 그러나 올해 FA 선언 선수 중 투수 자원 자체가 적다. 두산에서 활약한 김승회(36), 한화에서 FA 자격을 얻은 박정진(41)과 안영명(33), 삼성 마운드의 맏형 권오준(37) 등 총 4명이다. 다들 나이가 많다. 냉정히 말하면 다른 팀에서 보상금과 보상선수까지 주고 영입하더라도 전력이 급상승할 만한 특급 카드는 아니다. 선수들 역시 다른 팀 이적보다는 팀 내에서 평가를 해주기를 바라며 FA를 선언했다고 보면 된다.
김승회-박정진-안영명-권오준(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 에이전트 시대, FA 협상 장기전 돌입
KBO리그는 내년부터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현재 에이전트들이 대부분의 선수들과 이미 연결돼 있다. 구단도 에이전트와 연락하면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A구단 실무 협상자는 “에이전트가 들어오면 구단이 힘들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에이전트와 얘기하는 게 더 나은 측면도 있다”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구단 직원과 선수가 대면 협상을 하면 감정적으로 흘러 협상이 진척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에이전트와는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 협상하기 때문에 대화가 차분하게 진행된다. 그렇다보니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에이전트는 FA 계약이 더딘 현재 상황에 대해 “FA 협상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KBO리그 FA 협상은 사실 너무 빨리 진행된 감도 없지 않다. 메이저리그를 보더라도 FA 협상이 12월, 1월까지 가기도 한다. 오히려 지금이 정상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