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나는 누구인가?…회색 인생 ‘같은 덫’에 걸린 두 남자의 고뇌

입력 2017-11-2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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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간도’는 신분과 정체성을 둘러싸고 고뇌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인기를 모았다. 사진은 영화 속 류더화(오른쪽)와 량차오웨이. 사진제공|디스테이션

영화 ‘무간도’는 신분과 정체성을 둘러싸고 고뇌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인기를 모았다. 사진은 영화 속 류더화(오른쪽)와 량차오웨이. 사진제공|디스테이션

■ 영화 ‘무간도’

경찰 스파이로 범죄조직 잠입한 진영인
범죄조직 프락치로 경찰관이 된 유건명
흰색도 검은색에도 속하지 못한 두 남자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불안이 부른 파열


단순히 이야기의 결말만은 아닐 터이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는 이들이 스스로 그 결론을 맺어주길 바라는 ‘열린 결말’로서 갈무리하기도 한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안겨주는 진한 여운이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점, 마지막 장면, 바로 ‘라스트 씬’(Last Scene)이다. 그래서 ‘라스트 씬’은 어쩌면 한 편의 영화가 드러내려는 모든 것이 담긴, 단 하나의 장면일지 모른다. 때로는 ‘에필로그’로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도 많아서 ‘라스트 씬’의 여운은 더욱 깊고 커지기도 한다. 표기법상 맞는 표현인 ‘라스트 신’이 아닌 ‘라스트 씬’이라 쓰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 유시민은 러시아의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저 유명한 시구를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200자 원고지 100장 분량의 긴 항소이유서를 써 법원에 제출했다. 그 전 해 9월 다른 학생들과 함께 ‘4명의 외부인을 경찰 정보원으로 판단해 감금, 폭행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뒤였다. 유시민은 자신이 학생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과정 등을 뛰어난 글 솜씨로 써내려가며 해당 사건의 주모자로 몰린 억울함과 학생운동가로서 당당한 생각을 항소이유서에서 밝혔다. 올해 6월 케이블채널 tvN의 ‘알쓸신잡’에 출연한 ‘작가’ 유시민과 오래 전 그가 쓴 항소이유서를 또 한 번 화제에 올려놓기도 했다.


● ‘프락치’ 그리고 회색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 캠퍼스에는 사복경찰이 상주하며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도서관 옥상에 올라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유인물을 뿌리며 구호를 외치는 학생이라도 나타나면 이들은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를 붙잡아갔다. 학교를 벗어나 가두로 나아가려는 학생 시위대를 막고 있던 교문 앞 경찰은 학교 안으로 뛰어들기 일쑤였다.

이들은 일부 학생이나 시민을 ‘정보원’으로 삼아 자신들의 일을 대신하게 했다. 그들, ‘프락치’다. 유시민이 연루됐던 사건 역시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불렸다.

프락치. 표준국어대사전은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서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실 프락치는 학생운동권 안에서도 서로를 불신하게 하는 작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학생운동의 노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박이 이어지던 때, 다른 노선의 조직에 스며들어가 활동가들을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오해를 받는 학생들 또한 적지 않았다. 운동에 대한 회의 혹은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번민으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이들의 ‘회색’이 그런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영화 ‘첩혈쌍웅’ 포스터. 사진제공|조이앤시네마

영화 ‘첩혈쌍웅’ 포스터. 사진제공|조이앤시네마


● ‘첩혈쌍웅’, 불안의 추억

저우룬파(주윤발)와 리슈셴(이수현) 그리고 예첸원(엽천문)이 주연한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을 본 것은 유시민이 구속되고 난 몇 년 뒤였다. 1989년 7월에 국내 개봉했으니 아마도 그해 가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첩혈쌍웅’은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로 다가왔다.(그 2년 전 개봉한 우위썬의 또 다른 영화 ‘영웅본색’조차 보지 못한 때였다) 남자들의 진한 의리와 비장함 가득한 스토리는 아직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던 눈에 그리 보이게 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빗어 넘긴 웨이브로 깔끔한 헤어스타일이 돋보였던 리슈셴과, 청초하게 아름다운 예첸원 그리고 그가 부르는 ‘천취일생’(淺醉一生)의 애잔함이 저우룬파의 비장함보다 더 또렷하게 멋져 보였다.

‘첩혈쌍웅’이 안겨준 신선한 충격과 재미는 이후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볼 만큼 큰 것이었다. 무언가 마음의 답답함이 해소되지 못할 때 잠시나마 속을 뻥 뚫리게 해주는 쾌감을 가끔씩 얻곤 한다.

어쨌거나 ‘첩혈쌍웅’의 그토록 강렬한 여운을 잊지 못하는 건 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했던 때 가슴을 향해 날아온 총탄 같은 영화로만 보였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를 지켜가야 할 것인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여전히 스스로 걸어 나아가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민해야 했던 청춘의 불안감은 쏟아지는 총탄에 맞서며 성당 밖으로 뛰어나가는 아쏭(저우룬파)과 리 경위(리슈셴)의 비장한 최후에서 엉뚱하게 위안받곤 했다.

영화 ‘무간도’의 한 장면. 사진제공|디스테이션

영화 ‘무간도’의 한 장면. 사진제공|디스테이션



● 더 이상 ‘회색’일 수 없다

엄혹한 시대를 어쩔 도리 없이 견뎌내야 했던 이들의 흔들리는 양심에 ‘사명’이란 것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을 거라 믿고 싶다. 다만 그 자책으로 엄청나게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역시 스스로를 회의하고 고민했으리라.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의 혼란스런 정체 역시 기어이 드러나고 말 일이다. 그러니 ‘회색’은 더욱 강건하게 자신을 세우고 또 지탱해내려 안간힘을 써야 했을지 모른다.

‘무간도’의 진영인과 유건명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연유도 거기에 있다. 경찰의 스파이로 범죄조직에 스며든 진영인이 정신적 아픔에 휘둘리는 것도 결국은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안간힘 때문이다. 자신이 경찰임을 끊임없이 되뇌며 스스로 채찍질하는 까닭도 그것이다. 범죄조직의 프락치로서 경찰관을 신분으로 삼지만 이제 프락치의 정체에서 벗어나려는 유건명의 고뇌와 최종의 선택 역시 새로운 자아로서 자신을 찾아 나서려는 몸부림이다.

그 안간힘과 몸부림이 끝내 부딪쳐 각기 정체와 자아에 파열음을 내기에 이르렀을 때 느꼈을 혼란스러움의 실체는 또 어떤 것일까.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내기에 더욱 진한 회색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유건명이야말로 회색과 흰색·검은색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던 때문이 아닐까.

진영인과 유건명은 한때 오디오에 대한 관심으로 우연한 만남을 나눴다. ‘같은 덫에 걸린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는 한 줄 카피의 의미는 바로 그 우연이 결국 필연이었음을 말해주는데, 정체와 자아의 파열이라는 ‘덫’을 향해 서로 아니 스스로를 몰아가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비극이야말로 가련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쯤에 서 있는지 대체 알 수도 없는 막막함이야말로, 죽지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다.

■ 영화 ‘무간도’

2002년 홍콩의 마이자우후위(맥조휘) 감독과 리우웨이창(유위강) 감독이 공동연출한 작품. 범죄조직에 침투한 경찰의 ‘언더커버’ 진영인(량차오웨이)과 경찰관 신분으로 위장한 조직의 ‘프락치’ 유건명(류더화)의 이야기. 신분과 정체성을 둘러싼 인간적 고뇌에 놓인 두 인물과 그 주변인들의 뛰어난 캐릭터 및 심리 묘사가 이전 홍콩 느와르와 대별되게 하는 명작이다. 각기 ‘혼돈의 시대’와 ‘종극무간’의 부제를 단 2, 3편으로 이어지며 큰 인기를 모았다. 할리우드영화 ‘디파티드’의 원작이기도 하다. ‘무간도(無間道)’는 열반에 이르는 네 단계(사도·四道) 중 ‘번뇌를 끊고 진리를 얻는 단계’를 뜻한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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