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글라이르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독일 선수 가운데 현역 최고는 펠릭스 로흐(29)다. ‘루지 황제’로 불린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루지 남자 싱글에서 정상에 오르며 역대 최연소 우승을 기록한 로흐는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도 남자 싱글과 팀 계주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했다. 평창대회도 그의 독주가 예상됐다. 지난달 벌어진 2017~2018시즌 국제루지경기연맹(FIL) 13차 월드컵 남자 싱글에서도 종합 1위에 오르며 로흐의 올림픽 3연패는 거뜬할 것으로 점쳐졌다.
루지에서 올림픽 3연패는 독일 출신의 게오르그 해클(1992년, 1994년, 1998년)에 이어 2번째 도전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로흐는 경기를 마친 뒤 고개를 숙였다.
로흐는 11일 밤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루지 남자 싱글에서 5위에 머물렀다. 총 4번을 주행하는 가운데 1~3차 시기까지 선두를 달렸던 로흐는 4차 시기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9번 커브에서 크게 흔들리며 레이스는 불안했고, 결국 메달권 밖으로 순위가 밀렸다.
로흐는 주행을 마친 뒤 헬멧을 쥔 채 괴로워했고, 관중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미국 방송 ESPN은 로흐의 실수를 우사인 볼트가 육상 100m 결승에서 자신의 발에 걸려 스스로 넘어졌거나,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축구에서 자책골을 넣은 경우에 비유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였다.
펠릭스 로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경기 후 로흐는 “이게 스포츠다.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가 있다. 모두가 내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이게 바로 스포츠”라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새 황제는 다비드 글라이르셔(24· 오스트리아)다. 글라이르셔는 최종합계 3분10초702로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 오스트리아의 첫 금메달이다. 아울러 오스트리아가 루지에서 우승한 건 1968년 만드레드 슈미트 이후 무려 50년만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홈페이지에서 글라이르셔의 우승을 ‘역사적인 승리’라고 묘사했다.
글라이르셔는 이번 평창대회가 올림픽 데뷔전이다. 아직 FIL 월드컵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했을 정도로 무명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올림픽에 출전한 루지 선수였던 만큼 DNA는 타고 났지만 그 누구도 우승을 예상하지 않았다.
글라이르셔는 “내가 빨랐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빨랐다는 건 몰랐다”면서 “믿을 수가 없다. 그것은 단지 마법일 뿐이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도 이번 대회의 우승은 로흐라고 예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펠릭스 로흐가 올림픽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실수를 했다”면서 “그러면서 모든 게 마법으로 통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