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신의 ‘빙상의 전설’] 금한(禁韓)의 땅, 여자 500m 고지에 태극기를 꽂아라!

입력 2018-02-1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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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쇼트트랙대표 최민정. 스포츠동아DB

쇼트트랙 강국 한국이 26년간 금 못딴 종목
박승희, 소치서 밀려 넘어져 통한의 동메달
스타트 약한 최민정, 아웃코스 공략 금 열쇠

● 쇼트트랙 최강국 대한민국의 미개척지 여자 500m


대한민국 쇼트트랙은 세계 최강이다.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개수만 22개로 최다 금메달 획득 국가다. 2위 중국(9개), 3위 캐나다(8개)를 합쳐도 대한민국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껏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나온 금메달은 모두 48개. 그중 약 44%의 금메달을 대한민국이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종목이 있다. 바로 여자 500m이다. 전이경, 진선유 등 역대 쇼트트랙 여제들이 금메달은커녕 결승전에 오르지도 못했다.

단거리 종목과 중장거리 종목은 발달하는 근육이 다르다. 중장거리 종목에 강한 역대 대한민국의 에이스 선수들은 단거리 종목에서는 부진했다. 특히 여자 선수들은 그 편차가 심했다. 여자 500m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그 외 종목에 전력을 쏟는 게 국제대회에 나가는 대부분 선수들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국제대회 여자 500m는 중국과 북미, 유럽 선수들의 각축전이었다. 금한(禁韓)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 출전했던 전이경이 파이널 B에서 1등을 한 후, 파이널 A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아 행운의 동메달을 얻은 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소치 올림픽 당시 박승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통한의 2014 소치 올림픽 여자 500m 결승전

그런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가 있었다. 지금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박승희다. 그는 소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선수로서는 사상 최초로 500m 결승전에 올라 금메달 획득의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3위를 달리던 엘리스 크리스티(영국)가 인코스로 추월을 시도하다가 2위인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에 걸려 넘어지면서 아리아나 폰타나의 손에 밀린 박승희까지 같이 넘어지는 참사가 벌어진다. 앞장서 달리던 세 선수가 넘어지면서 꼴찌였던 중국의 리지안루가 어부지리로 1위로 나서고, 다시 일어서 달리려던 박승희는 한 번 더 넘어지면서 4위로 쳐진다. 경기 후 엘리스 크리스티가 실격을 당하며 박승희는 동메달을 획득하지만, 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너무나 아쉽고도 뼈아픈 결과였다.


● 무서운 신예 최민정 쇼트트랙 새 여제가 되다

하지만 소치 올림픽 이후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엔 더 뛰어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다시금 여자 500m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주인공은 최민정이다.

최민정은 성인 무대 데뷔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고작 석 달 차이로 나이 제한에 걸려 소치 올림픽 출전은 무산됐지만 국내 무대를 평정하며 차세대 스타로 각광을 받았던 그는 2014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2위의 성적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후 월드컵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하더니 급기야 2015년 세계선수권 대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그리고 2016년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2연패를 하며 명실상부 새로운 쇼트트랙 여제로 등극했다. 이번 시즌엔 대한민국의 취약 종목인 500m 종합 순위 2위에 오르는 등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2006년 진선유와 2010년 왕멍의 3관왕 기록을 뛰어넘어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쇼트트랙 전 종목 금메달까지 노릴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500m 예선 당시 최민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최민정의 500m 우승 가능할까?

그러면 최민정의 500m 우승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월드컵 랭킹 2위이고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지만 다른 종목에 비해서 우승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스타트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500m에서 최민정의 스타트는 다른 우승 후보들에 비해 조금 늦은 편이다. 스타트에서의 열세를 아웃코스에서의 엄청난 가속력과 체력으로 만회하는 양상이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시즌 최민정은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2, 3차 대회에서는 부진했고, 홈에서 벌어진 4차 대회에서는 컨디션을 회복한 엘리스 크리스티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엘리스 크리스티뿐만 아니라 월드컵 랭킹 1위인 캐나다의 마리안느 생젤레와 4위 킴 부탱, 3위이자 소치 500m 은메달리스트인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가 강력한 우승 후보고, 이번 시즌 부진했던 중국의 판커신도 전통의 강호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특히나 중국은 2014 소치 올림픽까지 올림픽 여자 500m에서 4회 연속 우승한 500m 강국이기 때문에 더욱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릴레함메르 올림픽 쇼트트랙 500m 금메달리스트 채지훈(가운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대학 선배 채지훈의 24년전 500m 금메달을 기억하라

이쯤 되면 남자부의 유일한 500m 금메달 채지훈의 경기를 복기해 볼 만하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채지훈은 이탈리아의 발레르민과 맞붙은 500m 결승전에서 스타트가 좀 늦더라도 순위를 차근차근 올려 마지막 바퀴에서 뒤집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그 계획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비록 4위로 출발했지만 빠른 스타트로 압도적인 선두로 치고나간 발레르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격한 채지훈은 마지막 바퀴에서 인코스를 막는 발레르민의 아웃 코스로 크게 돌아가며 대역전승을 일구어냈다.

이 경기는 아웃코스 추월을 장기로 삼는 최민정으로선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 당시 채지훈이 연세대학생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재의 최민정 또한 동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학 동문 모임에서 선후배로서 만난 적도 있다. 과연 최민정이 까마득한 대학 선배의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플레이로 많은 국민들의 박수를 받으리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빙상 칼럼니스트
아이스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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