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스타들 명언열전…빙속여제 이상화 “은메달이 12년 만에 날 차지했다”

입력 2018-02-23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은메달리스트 이상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은메달리스트 이상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변의 노메달 로흐 “이게 바로 스포츠”
머레이 감독 “라커룸에서 정치는 없다”
고다이라 “이상화는 함께 울어준 친구”
환희와 위로, 말 한마디로 올림픽 빛내


사람의 말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속에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메시지가 담긴 말은 상대의 가슴을 후벼서 파고드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고 때로는 천냥빚도 갚아준다. 또 세월을 이어가며 교훈을 주고 누군가의 인생목표도 된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도 많은 말이 나왔다. 올림픽 무대와 최고를 향한 도전과 열망,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순간에 나온 절망, 경쟁자를 위로하는 행동과 말, 스포츠가 지닌 정치적 의미를 담은 메시지 등 다양했다.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대표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대표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인류최대의 축제를 향한 도전

이번 평창대회는 유난히 무한도전의 열정을 보여준 사람과 팀들이 많았다. 특히 상식을 깨는 도전을 통해 평창무대에 참가한 올림피언의 말은 스포츠가 가진 많은 장점 가운데 하나인 역경을 돌파한 도전을 실감하게 했다.

인프라도 돈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육상 선수들이 생소한 동계종목으로 평창에 참가하기 위해 힘든 여정을 겪었던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대표팀의 세운 아디군은 “절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말라. 언제나 노력하고, 목표가 무엇이든 있는 힘껏 덤비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가나의 스켈레톤 대표선수 아코시 프림퐁의 말도 울림이 있었다. “모두가 메달을 따고 싶어 하지만 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게 목표다. 조국과 아프리카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했기에 행복하다. 2018년은 내 삶에 던져진 일종의 보너스다. 한 번에 한 걸음씩 더디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는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이레인 뷔스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레인 뷔스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승리를 향한 열망

올림픽은 참가에도 의미가 있지만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서려는 모든 선수들의 열정이 농축된 무대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통산 10번째 메달로 이 부문 기록을 세운 네덜란드 뷔스트는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딴 뒤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바퀴에서 힘에 부쳤다. 난 집에 은메달이 많이 있다. 그래서 금메달을 꼭 따고 싶다”고 했다. 뷔스트는 결국 소원대로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스노보드의 황제 미국의 숀 화이트는 “4번째 올림픽이지만 내가 도전자처럼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선수들이 나를 불타게 만들었다. 내 평생을 걸었던 것이 무엇인지 결선에서 보여주겠다”고 장담했고 결국 우승을 향한 투지를 불사른 끝에 금메달을 따냈다.

펠릭스 로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펠릭스 로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좌절 그 이후

루지 싱글에서 대회 3연패에 도전했으나 마지막에 좌절한 독일의 펠릭스 로흐는 “이게 스포츠다.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모두가 내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이게 바로 스포츠다”고 한탄했다. 이 결과는 평창올림픽에서 나온 대 이변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ESPN은 이 같은 결과를 “우사인 볼트가 육상 100m 결승에서 자신의 발에 걸려 스스로 넘어졌거나,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축구에서 자책골을 넣은 경우”라고 평가했다.

로흐를 꺾고 우승한 다비드 글라이르셔는 “내가 빨랐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빨랐다는 건 몰랐다. 믿을 수가 없다. 그것은 단지 마법일 뿐이다. 로흐가 실수를 하면서 모든 게 마법으로 통했다”며 기뻐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는 500m 레이스를 마친 뒤 “은메달을 딴 게 아니라 은메달이 12년을 기다려 나를 차지한 것 같다”면서 역대 은메달리스트 가운데 가장 멋진 어록을 남겼다. 이미 같은 종목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딴 전설급 선수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새라 머레이 감독-박철호 감독(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새라 머레이 감독-박철호 감독(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스포츠가 주는 평화와 정치의 메시지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팀 코리아의 새라 머레이 감독은 젊은 나이지만 스포츠와 정치의 통찰력이 빼어난 말을 많이 남겼다. 개막식 남북 선수단 전원참가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정치는 존재하지 않지만, 경기장을 벗어나면 단일팀은 분명 정치적 메시지를 지닌다. 언론 앞에 서는 순간에는 우리가 두 팀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팀이었다. 정치적인 결정으로 한 팀이 됐지만 한 팀으로 경기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이었다. 후회는 없다. 선수들은 그사이 친구가 됐다”면서 팀 코리아에 담긴 의미를 잘 설명했다.

뒷날 평창대회를 기억할 때 여자 아이스하키 팀 코리아와 함께 오래 떠오를 장면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이상화의 고다이라 나오의 포옹일 것이다. 역사인식을 두고 껄끄러운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새로운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포옹을 두고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의 NBC는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AP통신은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지만 화합을 보여줬다” 일본의 스포츠닛폰은 “한일정상 결전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결말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상화-고다이라 나오(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상화-고다이라 나오(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상화는 “경기 뒤 몸이 저절로 고다이라 쪽으로 갔다. 치열하게 정상을 다퉜던 친구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나 보다. 잊지 못할 순간이 됐다”고 했다. 고다이라는 “내가 슬럼프 때 옆에서 함께 자리를 지켜준 친구다. 정말 경기가 풀리지 않아 경기장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이상화가 내게 와서 함께 울어줬다. 그래서 나도 이상화의 마음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다이라는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에서 상대가 힘들 때 진정으로 위로해주고 공감해줘야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린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켰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