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에서 유원지 인형 파는 아저씨가 됐다며 웃는 배우 최종남. 그의 두 번째 인생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즐겁게 말이다.
최종남은 어느새 데뷔 18년 차가 된 베테랑 배우다. “동네 창피하다”고 만류하던 아내와 자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1년 영화 ‘몽중인’으로 데뷔했다. 잘 나가던 전자기업 회장님 자리를 박차고 ‘깡패 두목’을 시작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최종남은 헬스클럽에서 배우들과 어울리다 이런 저런 인생을 바꿔가며 사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리고 우연히 배우 이경영의 손에 이끌려 그가 연출을 맡았던 영화 ‘몽중인’(2002년)에서 덜컥 조연급 ‘깡패 두목’을 연기하게 됐다.
당시 85kg으로 작지만 우람했던 최종남은 그의 말을 빌려 말만 안 하고 있으면 그냥 자체가 ‘깡패’였다고. 그리고 다른 인생을 연기하는 묘한 힘에 이끌려, 이왕 이렇게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 다짐했다.
이후 관지림의 뮤직비디오 속 삼합회 두목, 영화 ‘어깨동무’ 속 깡패 출신 건설업 회장 역 등 그야말로 깡패 전문 배우가 됐다. 하지만 최종남은 나이는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깡패를 할까 하는 마음에 유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살을 빼기 시작했다.
“그런데 살을 빼고 나니까 캐릭터가 아예 없어 진 거에요. 그냥 동네 아저씨, 부드러운 이미지만 남은 거죠. 그때부터 단역을 하게 됐어요. 태안의 유원지에서 인형 파는 아저씨, 옆집 아저씨 등...그 한 장면을 찍기 위해 기름값도 안 되는 출연료를 받았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았어요. 그 덕에 슬픔과 눈물 사랑을 알았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한 단계, 두 단계...그 이상의 오름을 원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최종남은 조연에서 단역이라는 내림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기할 수 있는 이 현실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한 장면 찍으려고 혼자 대기하고, 자식 같은 스태프들에게 괄시도 받고, 커피나 빵을 사갖고 가면 ‘이런 거 할 시간에 연기 연습을 해라’ 소리도 들어보고…. 힘들었죠. 그럼에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더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렵게 철거촌에서 살았어요.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살았죠.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그 두 끼가 평범한 거예요. 세끼를 먹으면 감사 한 거죠. 그냥 이렇게 두 가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릴 때의 고생스러운 기억이 최종남에게는 감사와 행복으로 남아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이런 마인드는 85세가 되신 노모 덕분이라고.
“얼마 전에 어머니가 새벽 예배를 가시다가 다리를 다치셨어요. 하도 걱정을 하니까 ‘두 손이 있고 다리 하나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시더라고요. 어머니의 그런 긍정 마인드를 받았습니다.”
최종남은 국내에서는 ‘누구?’ 하는 반응이 허다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그야말로 한류 스타다. 최근 래퍼 산이와 걸그룹 다이아 정채연이 주연한 영화 ‘라라’(감독 한상희)로 눈도장을 찍은 이유다. ‘라라’는 지필(산이 분)이 헤어진 여자 친구 윤희(정채연 분)의 흔적을 더듬어 찾아온 베트남에서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화는 2월 2일 베트남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배우가 베트남어를 하는 것이 독특했던지 알아보시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전혀 못 알아보는데…(웃음). 사인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당황했지만 좋았어요.”
영화 ‘라라’, ‘너에게만 들려주고 싶어’, ‘굿바이 그리고 헬로우’ 스틸
최종남은 최근 개봉한 영화 ‘머니백’에서 코믹한 슈퍼주인으로 변신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코미디 연기에 대해 물으니 언젠가 꼭 ‘나 홀로 집에’ 같은 휴먼 코미디를 꼭 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리얼하게 웃을 수 있는…꼬마들을 괴롭히는 악당 아저씨를 꼭 해보고 싶어요. 악당이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지고 마는 역할이요. 아이들이 저를 보면서 통쾌해하고 즐거움을 갖을 수 있는 휴먼코미디를 꼭 하고 싶어요.”
늦은 나이에 꿈을 이뤘고, 꿈을 이뤄가고 있는 최종남은 이름이 알려져서 유명세를 타는 것 보다 ‘지금이 참 좋다’고 말한다. 그는 꾸준히 선후배들의 독립영화 등 각종 프로젝트를 돕고 있다. 최종남은 그들이 제2의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될 수 있도록 밀알이 되어 쌀이 틀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은 큰 소명이라고 말한다.
“이름이 알려진 선후배들을 보면 외로워하고 우울증도 오는 것 같고, 스타가 됐지만 제약이 많더라고요. 모르게 연기만 할 수 있는 지금이 참 좋아요. 그리고 돈이 없어 힘들게 제작하는 대학생들, 선후배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고요. 제가 유명해지면 아무래도 힘들겠죠?(웃음).”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도너스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