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LG 커닝 페이퍼 사건의 재구성

입력 2018-04-19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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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중요한 영업비밀을 허술하게 벽에 붙였지만 규정은 모두 피해 가
프로페셔널의 냄새가 나는 아마추어 같은 행동의 숨겨진 이유는?
전력분석 자료공부 열심히 안하는 선수들을 위한 구단의 고육책?
코칭스태프도 모르는 누군가의 독단적 판단이라면?


LG 트윈스가 18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길 행동을 한 것이 드러났다. 덕아웃 뒤 통로의 벽에 상대팀 배터리의 사인 정보를 담은 많은 종이를 붙여놓은 것을 사진기자들이 보고 뉴스로 다뤘다. 많은 매체들은 사인 훔치기라고 보도하고 있다. 새로운 이슈를 찾아서 물어뜯고 싶은 이들에게 던져진 아주 훌륭한 먹잇감이다.

기자는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많다.

먼저 왜 이런 중요한 영업비밀을 선수는 물론 다른 사람들, 특히 기자들도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는 복도에 붙여놓은 것일까. 보통 이런 자료는 3연전 첫날 또는 전날 숙소에서 미팅을 통해 선수단에 전달한다. 경기 전 동영상 분석은 물론 전력분석팀에서 정리한 자료를 담당 코치나 전력분석팀장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선수들은 이를 열심히 머리에 담은 뒤 경기에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LG의 이번 행동은 요점을 담은 자료를 공부 못하는 아이를 위해 교실 복도에 붙여놓은 것과 비슷하다. 만일 이 자료를 덕아웃에 뒀다면, 수능시험 때 커닝페이퍼를 소지한 부정행위와 같다. 의도만으로도 시험지 몰수다. 그래서 더욱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몇몇 야구인들에게 이와 관련해 자문을 구하자 공통적으로 “어리석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야구인으로서 창피하다는 이도 있었다.

그만큼 야구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어느 원로 야구인은 “그런 자료를 붙여놓은 친구나 그것을 보고도 내버려둔 코칭스태프나 모두 한심하다. 한마디로 본헤드 플레이”라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LG 구단 관계자도 “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어느 팀이나 상대팀의 사인을 훔쳐보고 그 내용을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그렇더라도 말로 설명하고 자료를 주기는 하지만, 이처럼 밖에다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나도 궁금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기자가 추측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대략 이렇다.

먼저 전력분석팀에서 준 자료를 LG 선수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자 걱정된 나머지 누군가가 커닝페이퍼 용으로 붙여놓았다. 이 시나리오라면 선수단과 전력분석팀의 신뢰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만천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LG 선수들의 사인 이해력이 부족해 자료를 보고 잊지 말라는 뜻에서 그곳에 붙여놓았다. 어떻게 되더라도 LG 선수들은 프로야구선수의 기본인 사인도 보지 못하고 전력분석 자료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어리숙한 프로페셔널이 된다.

사실 의외로 사인을 못 외우는 선수들은 많다. 1군과 2군 선수의 차이가 사인 이해력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즌 전에 각 팀이 정한 사인을 시즌 도중 쉽게 바꾸지 않는 이유다. 사인이 워낙 복잡한데다 몇몇 이해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중요한 순간 사인을 착각해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각 팀이 포수 트레이드를 유독 꺼려하는 속내도 각자 팀의 영업비밀이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1군 선수 수준이라면 그곳에 붙여놓은 자료 정도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야 한다.

기자가 추측한 시나리오 1, 2번이 아닌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LG는 졸지에 야구초짜 선수들의 집단이 됐다. 비신사적 행동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이 점이 가장 창피할 것 같다.

또 다른 궁금증은 규정 위반 여부다.

KBO리그 규정 제26조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행위 금지 조항을 보면 ‘①벤치 내부 베이스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 투수의 구종 등의 전달행위를 금지한다. ②경기 시작 이후 벤치 및 그라운드에서 무전기, 휴대전화, 노트북, 전자기기 등 정보기기의 사용을 금지한다(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 도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로 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자료는 주자의 도루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LG의 행위는 1항의 상대 투수 구종 전달행위에서 벗어난다. 또 덕아웃 바깥 복도는 벤치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두 번째 조항도 절묘하게 피해갔다. 이 조항을 적용하려면 자료가 언제부터 벽에 붙여졌는가가 중요해진다. 만일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붙여놓은 것이라면 경기 도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 조항을 기막히게 피해간다. 비신사적 행위로 야구계의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끔 해둔 절묘한 커닝페이퍼 부착 위치다. 그래서 더욱 프로의 냄새가 나는 아마추어적 행동이다.

LG는 문제의 사진이 공개된 뒤 하루가 지나서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 내용에 팀이 처한 곤혹스러움이 드러난다. 우선 이 해프닝을 ‘사인이슈’라고 정의해 자신들이 원하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 대신 모든 사과의 표현을 써서 잘못을 인정하고 빨리 언론의 집중포화에서 벗어나겠다는 속셈은 감췄다.

“모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한다.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이번 건으로 야구팬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릴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이었음을 통감한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반성하고, KBO리그가 지향하는 클린 베이스볼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여러 말을 했지만 왜 이런 일을 했고 목적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부에서 다양한 후폭풍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보자면 LG의 커닝페이퍼 해프닝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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