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김경문마저…. 프런트권력에 밀려나는 현장권력

입력 2018-06-04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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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는 3일 야심한 시각에 김경문 감독의 사퇴와 유영준 단장의 감독대행 임명을 발표했다. 정규시즌 통산 896승을 거둔 명장의 시즌 도중 전격 하차뿐 아니라 프런트 수장인 단장의 감독대행 취임 모두 지극히 이례적이다.

이번 일은 지금 당장뿐 아니라 훗날 KBO리그를 되돌아볼 때도 특기할 만한 사건으로 기억될 수 있다. KBO리그 초창기부터 지속되어온 프런트와 현장의 힘겨루기 또는 알력이 메이저리그에서처럼 섣불리 되돌리기 힘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음을 상징하는 이정표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프로에서 선수는 고사하고 코치 경력도 없는 프런트 최고위 임원이 현장을 접수한’ KBO리그 최초의 사례로는 남을 듯하다.

메이저리그에선 프런트권력이 현장권력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단장(General Manager)과 감독(Manager)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도 확인된다. 말 뜻 그대로 단장은 선수단을 포함한 구단 운영을 ‘총괄’한다. 20년 전 등장한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현 부사장)의 성공 이후로는 메이저리그의 프런트야구가 한층 강화됐다.

“지금부터 우리 조직은 상의하달식으로 운영됩니다. 선수수급문제도 우리가 직접 통제하겠습니다. 그건 원래 우리가 할 일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야구팀은 감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빈 단장의 독특한 구단운영방식과 철학을 지칭하는 ‘머니볼’을 소개한 동명의 저서(마이클 루이스 지음·윤동구 옮김·한스미디어 펴냄)에 나오는 말이다. 2003년 1월 보스턴 헤럴드에 실린 빈 단장의 인터뷰 중 일부다. 이 언급대로 이제 메이저리그의 감독은 단장이 꾸려준 선수단으로 경기를 치르는 존재일 뿐이다.

풍부한 현장경험보다는 프런트야구를 십분 이해하고 충실히 협조할 수 있는 이론적 지식과 융통성(프런트와의 소통능력)을 겸비한 젊은 감독이 메이저리그의 대세다. 올 시즌부터 뉴욕 양키스를 이끌고 있는 애런 분 감독이 대표적이다. 코치 경력은 아예 없다. 2009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해설가로만 일했다. 분처럼 올해 보스턴 지휘봉을 잡은 알렉스 코라 감독도 마찬가지다. 현장 지도자 경력이라고는 지난 한 해 휴스턴 벤치코치가 전부다.

이제 KBO리그에서도 프런트권력은 현장권력을 능가한다. 2012년 말 넥센이 염경엽 감독(현 SK 단장)을 선임한 뒤로 표면화돼 지금은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염 감독은 LG에서 스카우트와 운영팀장을 역임한 경력이 짧은 코치 경력보다 훨씬 강렬한 ‘야구인’이었다. 넥센과 염 감독의 성공에 자극 받은 여타 구단들이 앞 다퉈 프런트야구를 강화했다.

간밤 NC에서 벌어진 김경문 감독의 전격 퇴진과 유영준 단장의 감독대행 선임은 이 같은 흐름에 쐐기를 박은 일대사건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제 외국인선수 영입과 선수단 처우문제 등을 놓고 더 이상 군말을 늘어놓거나 심지어 구단에 불만사항을 전달하는 감독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최소한 당분간은 말이다. ‘전지전능한’ 프런트만 있을 뿐이다.

제아무리 명장이라도 성적이 부진하다면 경질 또는 사퇴가 불가피하다. 종목을 불문하고 그렇다. 다만 그 자리를 현직 코치도 아닌 프런트 임원이 메우는 일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옳고 그름 또는 좋고 나쁨의 차원은 전혀 아니다. 그만큼 ‘존중받고 있는지 또는 존중하고 있는지’를 묻는 정서적 차원의 접근이다.

한 분야에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성과를 이룬 ‘장인(거장)’의 물러난 자리를 프런트로 메운다는 발상은 어찌 보면 효율성 극대화의 원칙에 입각한 판단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처럼, 현재진행형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KBO리그의 다른 구단들처럼 올 시즌 후 또는 수년 후 NC가 거둔 성과를 확인하면 된다. KBO리그에서도 명확해진, 현장권력을 압도하는 프런트권력의 미래가 궁금하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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