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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야구에서는 희생번트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 야구를 통계로 접근하는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 톰 탱고에 따르면 무사 1루의 기대득점은 0.859점이다. 1사 2루의 기대득점은 0.664점으로 오히려 무사 1루보다 낮다. 희생번트로 아웃카운트와 베이스 하나를 바꾸는 것은 통계에 비춰봤을 때 비효율적인 작전이라는 의미다.
● ‘경기당 0.64개’ 역대급 최소 희생번트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불어온 ‘희생번트 축소’ 바람은 최근 KBO리그의 지형도까지 바꾸고 있다. 10일까지 431경기를 치른 KBO리그에서 희생번트는 총 275개가 나왔다. 경기당 0.64개로 시즌 전체로 환산하면 약 461개다. 이는 경기당 0.83개 희생번트가 나온 지난해(총 600개)보다 훌쩍 줄어든 수치다.
역대 최소 기록은 프로 원년인 1982년의 214개. 하지만 당시에는 총 240경기가 펼쳐졌다. 경기당 0.89개의 희생번트가 나왔다. 그 다음으로 희생번트가 적었던 시즌은 1984년의 341개인데, 총 300경기가 치러졌으니 경기당 1.14개의 희생번트가 나왔던 셈이다. 올해는 역대 가장 희생번트가 적은 시즌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1회부터 희생번트로 대량득점 대신 짜내는 광경은 더욱 보기 힘들다. 올 시즌 1회 희생번트는 리그 전체에서 17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넥센은 1회에 희생번트를 한 번도 대지 않았고, 최다 팀인 SK와 LG도 4개뿐이다. 타고투저가 점차 심해지는 KBO리그에서 경기 초반 희생번트는 아웃카운트 낭비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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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스포츠동아DB
● 한화, ‘번트의 팀’ 색을 완벽히 지우다
리그에서 희생번트를 가장 지양하는 팀은 단연 한화다. 한화는 올 시즌 87경기에서 단 16개의 희생번트를 댔다. 전임 김성근 감독 시절에는 매번 리그 선두를 다퉜으나 올해 확실히 색깔을 바꿨다. 넥센과 KT도 22개, NC가 23개의 희생번트로 점수 짜내기를 최대한 피하는 분위기다. 희생번트 최다 팀은 삼성이지만 단 35번에 불과하다. 희생번트는 리그 전반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올 시즌 리그 희생번트 1위 타자는 나란히 9개를 기록한 오지환(LG)과 나주환(SK)이다. 노수광(SK·8개), 이명기(KIA·6개), 박해민(삼성), 신본기(롯데·이상 5개)이 뒤를 잇는다. 2014년만 해도 조동화(당시 SK·28개), 정수빈(당시 두산·22개) 등 ‘전문 번트꾼’이 있던 모습과 딴판이다.
작전 중 하나가 사라져가지만 불붙은 리그 득점 페이스는 식지 않는다. 올 시즌 KBO리그 평균 타율은 0.283으로 2017년(0.286), 2016년(0.290)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리그 득점 역시 ‘역대급 타고투저’였던 지난 2년과 비슷한 페이스다. 희생번트가 대폭 감소했지만 득점 추이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야구장에서 희생번트는 의미를 더욱 잃어간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