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순간] 3.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유승민 “허리 부상이 오히려 약 됐죠”

입력 2018-08-1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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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유승민(36)은 ‘탁구 신동’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97년 최연소(15세)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됐고, 2000년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으며, 2002년 부산아시아게임에선 중국을 꺾고 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탁구인생의 정점을 찍은 건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다. 결승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물리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남규 이후 16년 만에 남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내가 우승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중국탁구에 열세였다. 그런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따니깐 더 부각되고, 더 이슈가 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탁구결승전 시청률이 46.1%를 기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유승민이 우승하자 외신들은 “중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고 했는데, 중국의 아성이 얼마나 굳건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승민은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왕하오와 6번 맞붙어 6번 모두 졌다. 다만 대결이 거듭될수록 실력차가 차츰 줄어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특히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5월 국내서 열린 코리아오픈탁구대회에서 왕하오와 맞붙어 풀세트 접전 끝에 3-4로 아깝게 졌는데, 그게 유승민에게는 큰 힘이 됐다. 그는 “이전까지는 지더라도 형편없이 졌다. 하지만 코리아오픈에서 접전을 벌인 게 자신감을 키운 계기가 됐다”고 했다. 또 져도 본전이라는 홀가분함과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이 승부를 갈랐다고 했다. “나는 결승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성과였지만, 왕하오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부감감이 컸던 것 같다”고 유승민은 기억했다.

또 한 가지의 우승 비결은 허리 통증 때문에 얻은 휴식이었다.

그는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평소 훈련 량의 1.5배를 했다.

그러다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올림픽 개막 2주를 남기고 국내 훈련 중 다쳤다. 지쳐서 힘이 다 빠질 정도로 훈련을 했는데, 그래도 쉴 수가 없었다. 몸은 준비가 안 됐고, 마음은 훈련 하고 싶은 상태에서 계속 연습을 하다가 허리가 삐끗했다.”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훈련을 쉬면 불안하다. 그도 그랬다. 그런데 아테네에 도착한 뒤 몸이 오히려 가벼워졌다. “허리가 아파서 2주 동안 쉬어준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석 달간 죽어라 훈련한 몸이 회복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참 신기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에 이어 독일 프로팀에서 활약하다가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부터 지도자로 나섰다. 유승민은 현재 IOC 위원이자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며 국제탁구연맹(ITTF) 선수위원장이다. 특히 IOC 위원은 자신의 도전 정신으로 스스로 성취한 일이어서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 스포츠동아DB

유승민 IOC 선수위원. 스포츠동아DB


그는 2016년 8월 리우올림픽에서 현장 투표를 통해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25일간 선거 운동을 했다.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외로운 선거에서 결국 승자가 됐다. 그는 “IOC 선수위원 도전은 올림픽 금메달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 과정이었다. 아무도 기대하지도, 당선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결국엔 이뤄냈다”면서 “어려울수록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나의 마음가짐”이라며 뿌듯해 했다.

IOC 위원은 명예직이지만 할 일이 많다. 또 찾는 곳도 많다.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했다.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장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맡아 잘 해냈다. “IOC 위원으로 1년 밖에 안 된 내가 선수촌장을 맡았는데, 대회 후 바흐 IOC 위원장에게 칭찬을 받았고, 외국에도 많이 알려졌다. IOC 위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남북탁구교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스웨덴 할름스타드세계선수권(5월), 올림픽 데이 평화탁구(6월), 코리아오픈 북한 참가 및 남북복식 단일팀(7월) 등 굵직한 이벤트가 이어진 가운데 그는 늘 한가운데서 뛰었다. “국가 분위기에 맞춰서 스포츠도 움직이고 있다. 탁구는 남북이 같이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종목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이 안 된 이유에 대해 그는 “단일팀 엔트리 확대가 없었고, 이미 선발전을 끝내 상태였다. 선수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한다.

서로 좋은 부분만 합쳐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선수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걸 거듭 강조했다.

그가 요즘 애착을 갖는 건 ‘기록’이다. 후배를 위해 현재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남기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각종 기록을 모아 책을 냈다. ‘2017년 유승민 IOC위원 활동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는 2017년 2월부터 12월까지의 주요활동 내역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향후 한국에서 IOC 위원이 나오면 이 기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기대했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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