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처럼 내셔널리그의 두 팀은 오랜 라이벌이다. 뉴욕에서 함께 야구를 했던 두 팀은 아웅다웅하며 많은 히스토리를 만들었다. 한 팀이 결정적인 순간, 상대의 훼방에 눈물을 흘릴 때 메이저리그 역사는 더 풍부해졌다.
두 팀은 LA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메이저리그의 서부개척 역사도 함께 썼다. 이런 두 팀은 언제부터 앙숙이 됐을까? 분명 두 팀이 처음부터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 사인미스는 오랜 우정도 금가게 한다
1913년 월드시리즈에서 스토리의 시작이 나왔다. 내셔널리그의 단골손님 뉴욕 자이언츠와 필라델피아 에슬레틱스 경기 때였다. 당시 뉴욕의 3루코치는 윌버트 로빈슨. 1902년부터 1932년까지 뉴욕 자이언츠를 통치해온 존 맥그로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였다. 두 사람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부터 동고동락을 해온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이었다.
좋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사인미스 때문에 깨졌다. 월드시리즈 최종전 3루 코치석에는 존 맥그로 감독이 나갔다. 1루 코치석은 로빈슨이 지켰다. 중요한 상황에서 뉴욕의 프레드 스노글래스가 안타를 치고 살아나가며 마지막 희망을 불태웠다. 이때 발이 느린 1루주자가 누구도 예상 못한 2루 도루를 시도했다. 필라델피아 포수의 송구는 정확했다. 주자 스노글래스는 2루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아웃됐다. 그 것으로 시리즈가 끝났다.
누가 봐도 도루 사인은 상식에 맞지 않았다. 책임소재를 따져야 했다. 아웃된 선수는 1루 코치의 사인을 보고 뛰었다고 했다. 졸지에 경기패배의 주범이 된 로빈슨은 3루의 감독이 내는 사인을 전달만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경기 뒤 선수단은 근처의 술집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도 논쟁은 이어졌다. 감독 맥그로는 “(내가)그런 터무니없는 사인을 낸 적이 없다. 시리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사인미스가 자주 나왔다”면서 과거의 일까지 걸고 넘어졌다. 로빈슨도 지지 않았다. “내가 했던 미스보다 평소 감독이 잘 못낸 사인이 더 많았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미스보다 더 많았다”면서 우겼다. 차츰 감정이 격해졌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심판 빌 클렘에 따르면 화가 난 로빈슨이 들고 있던 맥주를 맥그로의 머리 위로 부어버렸다고 한다.
로빈슨.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사인미스에 이은 말싸움으로 해고된 코치 라이벌 팀 감독으로 가다
로빈슨은 그날로 해고됐다. 하지만 능력자였던 까닭에 다음 시즌 브루클린 다저스의 감독으로 갔다. 그날 이후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은 이후 공식행사 외에는 말도 섞지 않은 채 원수로 지냈다. 18년간 두 사람은 라이벌 팀의 사령탑으로 상대 덕아웃을 바라보며 치열한 전쟁을 했다.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역사에 나오는 많은 신경전과 라이벌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두 팀의 이야기를 보면 오버랩 되는 KBO리그의 팀이 있다. 우리 프로야구 초창기의 삼성과 OB다. 원년 우승팀 OB의 감독과 코치였던 김영덕, 김성근은 1984시즌을 앞두고 삼성과 OB의 사령탑으로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사이가 나빠졌다. OB는 김영덕 감독이 삼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고 믿었다. 김영덕 감독과 삼성은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했다.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사이가 틀어진 두 팀은 1984시즌 2차례의 집단 난투극과 함께 한 차례의 관중난동의 원인을 제공하며 KBO리그의 역사를 만들었다. 난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김일융 조종규 김근석 이홍범 오대석 등이다. 관중난동에는 구천서가 피해자로 등장한다. 라이벌 스토리의 양념으로는 배원영과 따귀가 큰 역할을 한다. 두 팀의 치열한 신경전은 결국 그 유명한 져주기 경기로 이어졌고 고(故) 최동원이 라이벌 스토리를 전설로 마무리했다. 되돌아보면 수많은 역사는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