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슬라맛 자카르타] 도쿄는 이용대가 있어야 한다

입력 2018-08-28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용대. 스포츠동아DB

배드민턴을 오래 지켜보면 마치 검술의 대결을 보는듯한 착각이 든다. 뜨겁지만 차가운 경기다. 시속 300㎞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셔틀콕은 오싹하다. 직접 라켓을 부딪치며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칼날 대신 날카로운 셔틀콕으로 상대 코트를 찌른다.

기 싸움이 대단한 종목이다. 한 번 세계랭킹 상위권에 오른 선수는 육체적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꽤 오랜 시간 정상권을 지킨다. 셔틀콕의 속도는 느려졌을지 몰라도 코트 전체를 보는 노련함과 현란한 기술은 새로운 경지에 오른다. 그래서 팀에는 동료들에게 듬직한 버팀목, 상대에게 위협적인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에이스가 필요하다.

배드민턴은 아시안게임(AG)이 올림픽보다 메달권에 오르기 더 힘든 종목으로 꼽힌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아시아에 워낙 강팀이 많아 예선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격전지에서 한국은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36년 동안 매 대회마다 메달을 땄다. 올림픽에서 선전도 이어졌다. 배드민턴은 효자 중에 효자 종목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8자카르타-팔렘방AG에서 한국 배드민턴은 빈손이다. 40년 만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손완호(30·인천국제공항공사)도 남자단식 8강에서 탈락했다. 남녀 단체전 메달 실패에 이어 개인전도 모두 8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나치게 과감하다는 평가가 따른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한 한국 대표팀은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스타 탄생을 기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성과는 있다. 서승재(21·원광대), 김원호(19), 강민혁(19·이상 삼성전기) 등 10대와 20대 초반 선수들이 큰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여전히 빈 자리가 느껴진다. AG에서 일본의 돌풍을 이끈 박주봉 일본대표팀 감독은 “한국 젊은 선수들에게 큰 가능성을 봤다. 이럴 때일수록 사실 앞에서 끌어주는 경험 많은 맏형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배드민턴은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이다. AG경기가 열린 이스토라는 메인 콤플렉스 GBK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다. 매 경기 관중이 가득했다. 자원봉사자, 관중들은 한국 취재진에게 종종 “이용대는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답변이 참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이용대(요넥스)는 이제 만 서른이다. 2년 뒤 2020도쿄올림픽 때는 32세다. 충분히 세계 정상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신체적, 기술적 전성기다. 그러나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배드민턴은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일년 내내 국제대회에 참가해야 한다. 광고와 계약 등에 제약이 많다. 이용대는 세계적인 선수로 더 다양한 활동을 위해 대표팀을 떠났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입장도 난처했다. 협회는 스포츠브랜드 회사와 후원계약을 맺고, 그 재원으로 유망주 육성과 대표팀 훈련을 진행한다. 이용대 등 스타플레이어 탄생이 이어져 배드민턴은 각 학교에 풍족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세계배드민턴은 최근 스타 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를 놓고 선수 개인의 활동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이제는 서로가 좀 더 깊은 고민을 할 때다. 이용대 없는 한국 배드민턴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