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는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바꿔놓았다. 전편 ‘죄와 벌’과 후속편 ‘인과 연’이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트렸다. 그 화제의 중심에 제작자 원동연 대표(왼쪽)와 김용화 감독이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원동연 대표
용화의 연출 허락, 쌍천만보다 기뻐
책임감 있고 유머감각 탁월한 감독
한국영화의 섹시함, 세계에 알렸죠
김용화 감독
신과함께 3·4편? 관객 의사가 먼저
덱스터, ‘아시아 디즈니’ 육성 도전
걸출한 애니 만들고 은퇴하는 게 꿈
두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나기까지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해할 만한 기다림이다. 작년 12월 개봉한 ‘신과함께 - 죄와 벌’의 1441만 흥행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8개월 만인 8월1일 후속편 ‘신과함께 - 인과 연’을 내놓으면서 숨 가쁜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이다. 12일 현재 ‘신과함께’ 1·2편이 모은 총 관객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넘는 2670만 명에 이른다.
‘신과함께’의 설계자 김용화 감독(47)과 작품 탄생을 이끈 제작자 원동연 대표(54·리얼라이즈픽쳐스)를 두고 ‘한국영화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라고 평하는 데 이견을 갖기 어렵다. 영화는 추석 연휴와 맞물려 극장 상영을 마무리할 전망. 최근 10개월간 누구보다 치열한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을 11일 서울 상암동 덱스터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감독은 “울컥울컥하다”고 했고, 제작자는 “이상하리만치 덤덤하다”고 했다. 영화를 넘어 콘텐츠의 확장을 이야기할 땐 누구보다 진지했고, 딸에게 보여주고픈 영화를 꺼낼 땐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대장정을 마친 소회가 궁금하다.
김용화(이하 김) “드라마틱한 몇 가지 순간이 떠오른다. 배급사를 옮겼을 때, 시나리오를 썼을 때, 두 편을 동시에 찍으면서 헷갈려서 힘들었던 순간들. 매번 겪는 감정이지만 허탈하고 허무하다. 울컥울컥한다. 다만 이젠 집사람과 맥주 한잔 하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 위로가 된다. 아침마다 (하)정우, (주)지훈이와 한두 시간씩 동네를 걸으면서 견디고 있다.”
원동연(이하 원) “2011년 한밤중 사무실에서 모기에 뜯기면서 ‘신과함께’ 웹툰을 읽던 순간의 잔상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다. 김용화 감독이 ‘형, 할게요’라고 연출을 허락한 날도. 그날의 기쁨은 1000만 흥행보다 더 크다. 다 끝난 지금은 덤덤하다. 정신과 의사인 매제한테 물어보니 극과 극의 감정은 통한다더라고. 너무 흥분해서 오히려 덤덤한 거라고.”
김 “맞다. 일종의 방어기제지. 또 언제 망할지 모르니까, 자중하라는 방어기제.(웃음)”
두 사람은 ‘신과함께’의 성과로 탁월한 커리어를 쌓았다. 김용화 감독은 데뷔작 ‘오! 브라더스’(310만)부터 ‘국가대표’(848만)를 거쳐 ‘신과함께’ 시리즈까지 지금껏 만든 6편의 영화로 평균 관객수 77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현재 기준, 단 한 명의 흥행감독을 꼽으라면 그 자리는 단연 김용화 감독의 몫이다. 원동연 대표는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10’ 안에 무려 3편을 자신이 제작한 영화로 채웠다. ‘신과함께’ 1·2편이 각각 2위와 9위에 있고 ‘광해, 왕이 된 남자’가 8위다.
영화 ‘신과함께 - 죄와 벌’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자로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원 “감사하지만 그런 수치보다 더 알아주길 바라는 게 있다. 한국영화 시장이 포화인 상태에서 김용화 감독은 아시아를 무대로 한국영화가 얼마나 섹시한지 알렸다. 또 한국 콘텐츠의 힘, 한국 기술력이 얼마나 앞섰는지도 알렸다. 케이웹툰부터 케이콘텐츠의 힘을 알린 기회가 ‘신과함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충무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선뜻 시도하기 어려워 돌고 돌던 프로젝트가 김용화만 만나면 ‘대박’을 친다고. ‘미녀는 괴로워’부터 ‘국가대표’, 이번 ‘신과함께’까지.
김 “내가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제작자들이 제안해준 덕분이지. 하지만 그런 제안은 감독이 가진 전부를 잃을 위험을 담보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좋은 재능이다. 그 중 내가 가장 값지게 여기는 건 바로 모험심이다. 유전적인 기질이 그렇다. 비교적 운도 좋았다. 물론 ‘미스터 고’(132만)가 흥행에 실패해서 그런 운을 일반화 시킬 순 없지만 말이다.”
김용화 감독은 연출자로 데뷔하기 전 부모를 여의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해보지 않은 일이 없고, 대학 땐 몇 년간 새벽 생선 장사를 한 일화도 유명하다. 부모를 향해 갖는 마음은 ‘신과함께’에도 녹아 있다. “한 땐 엄청난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감독은 “잘사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감독들과도 비교했지만 부모님께서 주신 유전자답게,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보다 내가 보는 세상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일찍 깨달은 편”이라고 했다.
-유전적 모험심도 나이가 늘면 줄어들 텐데.
김 “그럴 거라고 기대하는데, 아직은 줄지 않는다. 그래서 더 두렵지.”
원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김 감독은 위험하면서도 의미 있는 도전을 좋아한다. 내가 주호민 작가(‘신과함께’ 원작자)한테 ‘해리포터처럼 만들겠다’고 꾄 것처럼 김용화 감독한테도 ‘네가 아니면 한국에선 이런 판타지를 못 한다’고 꾀었다. 그의 유전자를 잘 알고 있으니까.”
김용화 감독은 원 대표를 “형”으로, 원 대표는 감독을 “용화”라고 부른다. 이들은 2006년 ‘미녀는 괴로워’ 연출자와 감독으로 첫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연은 그보다 이른 2000년부터다. 제작자와 시나리오 작가로 인연을 맺었다.
원 대표는 “우리의 인연에는 3명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3명이 ‘귀인’인지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광모 감독, 정태성 대표(CJ ENM 영화사업부문장), 박무승(KM컬쳐) 대표다. 이들을 빼곤 우리 인연을 설명할 수 없다. 이광모 감독이 중앙대 교수로 있을 때 눈여겨 본 제자가 김용화 감독이다. 나와 정태성 대표가 영화사를 만들고 가장 먼저 데려온 사람이 바로 김용화 감독이고. 이후 감독은 ‘오! 브라더스’로 멋지게 데뷔했고, 나는 ‘마지막 늑대’를 제작해 폭삭 망했다. 그때 김 감독이 나를 찾아와 ‘미녀는 괴로워’를 하겠다고 했다. 천군만마였지. 당시 제작자인 박무승 대표는 ‘미녀는 괴로워’가 어려움을 겪을 때도 끝까지 김용화 감독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다.”
원동연 대표(왼쪽)와 김용화 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인연이 20년이다.
김 “하~ 끔찍하네. 20년이라니!”
원 “피곤하지. 이제 인연을 끊어야 하나. 하하!”
김 “사실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감독은 부침이 심하다. 그런 면에서 원 대표님이 내게 건넨 여러 제안은 의미가 있다. 내가 몇 번이나 자신이 없어 거절해도 ‘너는 잘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제안해준 분이다. 그런 과정을 모두 잊고, 내가 잘 만들어서 영화가 잘된다고 믿고 산다면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생각한다.”
-제작자가 보는 김용화는 어떤 감독인가.
원 “전체를 조감하는 실력자. 보통 현장에선 ‘감독은 좋은 걸 원하고 프로듀서는 필요할 걸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창작자는 리스펙하고, 자본은 케어한다’고 말한다. 표어 같지 않나. 하하! 뛰어난 크리에이터이자 무한한 책임감도 있다.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탁월하다.”
-감독이 보기에 원동연 대표는.
“사실 영화 캐릭터를 연구할 때 원동연 대표를 많이 살핀다. (원 “그러니 내가 얼마나 피곤하겠어!”) ’신과함께‘에 나오는 캐릭터 대부분도 원 대표를 참고했다. 해원맥, 강림, 심지어 덕춘에서 원일병까지. 그만큼 인간적인 분이다. 신뢰도 중요하다. 형님은 자신의 생각에 굉장히 솔직하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는다. 또 적당한 정의로움이 있고, 덜 정치적이다.”
원동연 대표는 달변가다. KBS 1TV 교양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또 집요한 추진력도 지녔다. ‘신과함께’의 영화화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영화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고집스럽게 견뎌 성공을 일궜다.
원 대표는 “나는 일관성 있게,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라며 “아버지 사업 때문에 초등학교 때 전학만 4번 다니면서 터득한 건, 내가 외향적이지 않고서야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했다.
-원 대표가 감각적이라면, 김용화 감독은 감성적이다.
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은 유년시절 내 기억과 맞닿아 있다. 전부 나에게 위로를 준 영화들이다. ‘백 투 더 퓨처’, ‘로보캅’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들. 나는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전략적인 고민도 했다. 결국 굉장히 솔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허위로 영화를 만드는 순간, 관객은 위로받지 못한다. 가르치려고 한다면 불쾌할 거다. 관객은 나보다 공부를 많이 했고, 고통스러운 경험도 많이 겪었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에도 단점이 많다. 관객이 내 영화를 ‘훌륭해’ 하면서 볼까? 아니다. 내 화법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다.”
영화 ‘신과함께 - 인과 연’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김용화 감독은 영화만큼이나 실제로도 진솔한 편이다. 그의 말마따나 부침심한 영화계에서 살아가는 숱한 감독 가운데 그 만큼 ‘평판’ 좋은 이도 찾기 어렵다. 안주하는 법도 모른다. 야구하는 고릴라를 그린 영화 ‘미스터 고’는 비록 흥행에 실패했지만 국내 시각효과 기술력을 진일보하게 만든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감독이 설립한 덱스터스튜디오는 이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VFX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과함께’ 탄생에도 덱스터스튜디오가 산파 역할을 했다.
-덱스터스튜디오를 통해 한국의 마블스튜디오, 아시아의 디즈니를 지향한다고 밝혔는데.
김 “지금 덱스터에서 하는 기획들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할리우드 마블의 역사도 1970년대 시작해 20~30년이 걸렸으니까. ‘신과함께’의 아킬레스건도 바로 그런 거였다. (마블처럼)관객이 받아들일 만한 ‘세계관’이 없다는 것.”
-어떻게 실현할 생각인가.
김 “장르보다 시장을 본다. 한국의 극장 매출은 정체되고 인구는 줄어든다. 어찌 보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덱스터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영화는 무조건 아시아 동시개봉으로 간다. 되든, 안 되든 계속 두드릴 생각이다. 좌표를 그렇게 세웠다.”
혁신적인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할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전은 당분간 김용화 감독과 덱스터스튜디오가 이끌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화산폭발을 다룬 하정우 주연의 ‘백두산’, 히어로가 주인공인 ‘봉수만수’를 비롯해 그가 직접 연출하는 우주배경의 ‘더 문’도 있다.
“‘더 문’은 현재 관심을 보인 미국 프로듀서에 넘어간 상태다. 아시아 동시 배급을 원하는데, 그 결과는 2~3달 뒤에 나올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한국영화, 혹은 할리우드 자본이 만든 중국영화가 될 수도 있다. 감독 김용화에겐 조국이 있지만 내 영화에는 조국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과함께’ 3·4편 제작 계획도 궁금하다.
김 “일단 판권은 구매해놓은 상태다. 투자배급사가 정해진 뒤 여러 설문조사를 거쳐 이야기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 관객이 보고 싶은지가 먼저 아닐까. 나는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할 감독이지,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놓고 관객에 보라고 말하는 과감함은 없다. 3·4편 상황은 여기까지다. 잘 태어난 작품이기에, 잘 지키면서 이어 가야 하는 책임과 숙명이 있다. ‘신과함께’ 극장 상영이 끝나면 드라마 제작을 위해 파트너들과 논의도 시작한다.”
원동연 대표(왼쪽)와 김용화 감독.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원동연 대표가 구상하는 새로운 방향도 궁금하다.
원 “산업적으로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전 세계에서 자국 콘텐츠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미국 영국뿐이다. 극장이란 플랫폼을 벗어나 콘텐츠의 확산도 다양해지고 있다. 앞으론 한국의 창작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될 거다. 범아시아에서 인정받을 기회도 생길 거고. 김용화 감독의 우려처럼 한국영화시장은 포화상태이고, 인구 증가도 멈춘데다 고령화에 접어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을 딛고 세계로 향하는 한국 창작자들에겐 기회가 많다. 필연적으로 올 거다.”
원동연 대표는 20대와 10대인 딸 셋을 둔 아빠다. 김용화 감독도 24개월된 딸이 있다. ‘내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는지 물었다. “가족이 함께 보낸 추억의 중심에 있는 영화”라는 답을 내놓은 원 대표와 비교해, 김 감독은 딸이 어려서인지 사뭇 긴 답을 내놨다.
“오늘 아침에도 어린이집 가는 딸아이와 뽀뽀하고 나왔다. 집사람이 가끔 묻는다. 언제 은퇴할 거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은퇴하겠다고 말한다. ‘토이 스토리3’를 보고 한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위대한 철학이 담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품처럼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