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①] 무엇이 그녀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나

입력 2018-10-01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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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천진난만한 막내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딸이 생전 남긴 메시지를 통해 엄마와 언니가 생과 사의 경계를 고통스럽게 마주한다. 엄마 역을 맡은 김희애는 절절한 모성애 연기로 감동을 전했다. 사진제공|무비꼴라쥬

■ 영화 ‘우아한 거짓말’

은따 견디지 못한 14살 소녀 천지
갑자기 세상 등진 톱스타 최진실
그녀들 아픔 감춘 우아한 거짓말


1980년대 중후반 이른바 ‘3저 호황’(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에 힘입은 고도성장, 지난한 싸움 끝에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몰고 온 민주화 열기와 개방적 분위기 속에서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앞선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무드 안에서 대중의 소비문화를 자극하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 그만큼 내수시장은 커져갔고, 광고가 자극하는 소비욕구는 TV를 통해 끊임없이, 대량으로, 순식간에 전파됐다.

“남자 퇴근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그때 한 신인이 전자제품 CF의 카피와 함께 등장했다. 카피 자체는 가부장적 냄새가 가득했을지언정, 이 신인이 드러내는 발랄함은 대중의 감성과 시선을 사로잡기에 넘쳐나고도 넘쳐났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질투’로 대표되는 트렌디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여주인공으로서 ‘신드롬’을 몰고 오기까지 했다.

문화평론가 강영희는 당시 대중문화 비평서 ‘TV:가까이 보기, 멀리서 읽기’에서 이 강력한 신드롬을 일으킨 신인의 매력을 ‘눈밑 주머니’에서 찾기도 했다. 강영희는 “어두운 고뇌를 드러내고 있는 듯한 이것이 그녀의 경쾌함과 발랄함을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상큼한 오기’를 말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며 자라난 ‘눈밑 주머니’의 주인공은 ‘신드롬’으로 스타로서 ‘신화’를 강화시켰다. 1990년대 초중반, 이전 세대와는 구별되는 당당함과, 소비문화 혹은 확신에 찬 자기주장으로 무장한 ‘신세대’의 표상으로까지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큼한 오기’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사진제공|무비꼴라쥬


●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 달라는 호소”

‘눈밑 주머니’의 주인공 최진실이 세상과 이별한 것은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최진실은 2008년 10월2일 오전 6시15분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신의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 정모씨는 자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혹한 현장을 수습해야 했다.

최진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그날 아침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속보가 알려진 시각, 출근길 택시 안에서 관계자로부터 사실 여부를 묻는 문의전화를 받는 사이, 운전기사는 “최진실이 뭐가 아쉬워 죽었겠느냐”며 실없는 사람 아니냐는 표정을 백미러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다.

최진실이 왜 스스로 세상과 이별하는 길을 택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긴 몇 가지 파편적인 메모와 주변 지인들에게 전한 몇 마디 말만이 생전 아픔과 지독하게 우울했던 일상을 짐작케 했다. 자신을 괴롭힌 온갖 괴소문이 그 고통의 진원지로 지목되기도 했다. 경찰이 관련 수사에도 나섰지만 뚜렷한 결론은 찾지 못했다.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과학적 도구”인 ‘심리부검’을 연구해온 서종환 전 경찰청 프로파일러는 그 핵심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 “정말 죽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책 ‘심리부검: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그는 “그 죽겠다는 의지를 찾느라 애쓰다 보면, 그 죽겠다는 의지가 사실은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 달라는 내면의 호소였음을 알게 된다”며 현장 경험과 연구로 갖게 된 안타까움을 표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사진제공|무비꼴라쥬


● 모두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도 14살 소녀 천지를 먼저 떠나보낸 언니 만지와 엄마가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인용될 뿐”(위 책)인, 동생과 딸이 남긴 아픔의 흔적을 되밟아가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그 고통이 남은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것일 텐데.

살아생전 밝고 속 깊었던 천지의 선택을 언니와 엄마는 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기에 미치도록 또 다른 아픔이 된다. 천지는 ‘우아한 거짓말’로써 생전 자신의 아픔을 감추려 했다. 그래서 그의 ‘우아한 거짓말’에 무심했던 남은 이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 언젠가 사실과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다. 천지는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 달라는 내면의 호소”를 실 꾸러미 속에 숨겨 놓았다. 그가 남긴 하나하나의 꾸러미를 풀어가는 과정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내 고통은 지워지지 않는다. 비극적 선택과 극단적 몸부림이 적어도 개인적 차원의 것에 머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선택은 대부분 결국 온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한 구조의 문제로 치환되어야 한다. 따라서 떠나간 이가 남긴 아픔의 흔적을 되밟는 것은 “적어도 나중에는 사람을 살리는 길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산”(위 책)에서 비롯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심리부검’의 현장에서 만나 분석과 연구를 지원해준 유가족들을 서종환 씨는 “당신들이 겪은 비극이 다른 이들에게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으로 공동체를 위하는 분들이었다”고 그 고통을 위로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 사진제공|무비꼴라쥬


■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14살 소녀 천지는 남의 일에 관심 없는 언니 만지와 대형마트 비정규직 판매원으로 일하며 당당한 생계를 이어가는 엄마를 오히려 걱정하는 착한 동생이자 딸이다. 하지만 천지는 만지와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은따’(은근히 따돌린다)의 고립감과 외로움이 몰고 온 비극이었다. 천지는 그 아픔을 실 꾸러미 속에 숨겨 놓았다. 실 꾸러미를 풀어가는 과정 속 만지와 엄마의 고통은 덜어질 수 있을까. 2011년 ‘완득이’에 이어 김려령 작가의 소설을 이한 감독이 2014년 영화화했다. 김희애, 고아성, 김향기가 주연했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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