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벤치의 작전타임에서 배우는 세상의 교훈

입력 2018-12-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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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감독과 선수들이 교감하는 중요한 순간인 타임아웃 시간에 나오는 말과 행동을 잘 살펴보면 감독의 지도철학과 선수들의 충성도, 팀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사진은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왼쪽부터). 사진|KOVO·스포츠동아DB

경기 도중 감독과 선수들이 교감하는 중요한 순간인 타임아웃 시간에 나오는 말과 행동을 잘 살펴보면 감독의 지도철학과 선수들의 충성도, 팀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사진은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왼쪽부터). 사진|KOVO·스포츠동아DB

V리그는 세트 사이는 물론이고 각 세트 도중 두 차례의 테크니컬 타임 등 여러 번의 타임아웃 시간이 있다. 이 때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하는 작전지시와 선수들의 반응을 보면 그 팀의 준비상황과 감독의 지도능력이 잘 드러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선수들에게 필요한 지시를 하고 흥분하거나 불안해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감독의 말은 단순하게 들리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심오하다. 과거에는 선수를 윽박지르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선수를 격려하는 말이 훨씬 많아졌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반복학습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여자구단이 감독에게 했던 유일한 요구사항도 그것이었다. 그 팀의 직전 감독이 작전타임 때 선수들을 혹독하게 대하면서 모기업의 이미지마저 나빠지자 내부경로를 통해 내려온 특별주문은 “대중이 보는 곳에서는 절대로 선수를 야단치지 말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 선수에게 용기를 주는 감독들의 말은


한때 ‘벤치토크’ 어록이 나왔던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여전히 말로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라운드 KB손해보험전에서 상대의 강한 서브에 실점한 문성민에게 “그렇게 들어오는 공은 누구도 못 받아.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고 따뜻하게 말했다. 리시브 부담으로 주전자리까지 내준 문성민이 모처럼 경기에 투입된 때였다. 혹시라도 베테랑이 용기를 잃을까봐 감독은 서브 에이스가 나오자 먼저 타임아웃으로 흐름을 끊은 뒤 문성민을 격려했다.

2라운드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의 벤치토크도 빛났다. 1세트 선수들의 승리욕심이 앞서 플레이가 급해지자 “왜 이렇게 서둘러. 이기려고 그래”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던 감독은 5세트 파다르의 서브에 실점을 하자 “파다르 서브가 그렇게 강하면 점수 먹는 거야. 괜찮아. 어차피 지기 밖에 더 하겠냐”면서 패배를 걱정하는 선수들을 위로했다.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도 문제점 지적 뒤 마지막 말은 항상 “괜찮아”로 끝낸다. 승리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을 달래가면서 더 잘해보자고 격려하는 후렴구다. 신영철 감독이 자주 하는 말은 “욕심 부린다고 되냐. 좋은 리듬으로 해야지”다. 그에 따르면 배구는 우격다짐이 아니라 리듬의 경기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도 상대의 서브표적 손현종 황두연을 자주 격려한다. 리시브 범실 뒤에는 꼭 “표정 살리고 버텨봐. 여기서 이겨내야지. 네가 불안해하면 상대도 다 알아. 용기를 가져”라며 질책보다는 용기를 준다.

물론 감독이 항상 따뜻한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3라운드 한국전력-현대캐피탈 경기에서 최태웅 감독은 이례적으로 세터 이승원에게 “계속 2인자에 머무를 것이냐”며 자극도 줬다. OK저축은행과의 2라운드 때는 세트별로 경기력이 롤러코스터를 타자 “분위기가 갑자기 쳐지는데 이렇게 인상 쓰고 있으면 다 빼 줄께. 계속 이런 식으로 경기하는데 왜 그래. 너희들 불만 있어?”라고 얘기했다. 그 발언 이후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더욱 집중했고 모두 풀세트 위기를 넘겨냈다. 그만큼 작전타임 때 나오는 감독의 말은 힘이 있다.

GS칼텍스 차상현 감독-대한항공 박기원 감독-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왼쪽부터). 사진|KOVO·스포츠동아DB

GS칼텍스 차상현 감독-대한항공 박기원 감독-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왼쪽부터). 사진|KOVO·스포츠동아DB


● 곱씹어보면 더욱 의미가 있는 감독의 말말말

이번 시즌 여자부에서 선풍을 일으키는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한 점이 두 점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많은 점수차로 앞서가던 경기가 선수들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점수가 좁혀지자 했던 말이었다. 범실 하나로 1점을 내주지만 그 것을 계기로 많은 실점이 이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뜻이었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세게 친다고 2점 주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선수들이 관중을 의식해 화려한 플레이를 하면 자만하지 말라면서 에둘러 표현한다. 3일 KB손해보험과의 3라운드서는 정지석에게 “갖다 박으려니까 그러지”라고 했다. 원블로킹 상황에서 상대코트에 내리 꽂으려다 블로킹을 당한 뒤였다. 사실 내리꽂는 스파이크나 빗맞은 공이나 모두 코트에 닿으면 1점이다. “한 번에 2점씩 주는 배구는 없다”는 말도 베테랑 감독은 자주 한다. 선수들이 욕심을 앞세우다 범실이 나올 경우에 하는 표현이다. 급해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지 무리해서 한꺼번에 한다고 답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 배구가 우리 인생에게 주는 교훈이다.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타임아웃을 부르면 선수들이 숨을 고르게 하면서 일단 멈춘다. 그 짧은 순간동안 감독은 생각을 가다듬는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먼저 생각하고 얘기해야 후회가 없다.

KB손해보험과의 2라운드 풀세트 접전 때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이승원에게 했던 말도 곱씹어볼만 하다. 결정적인 연결미스로 세트를 내준 뒤 감독은 어린 선수의 등을 토닥거리며 “괜찮아, 이러면서 크는 거야”라고 했다. 세상 누구도 실수를 통해 경험을 쌓아간다는 인생의 진리가 생각났다.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사진제공|KOVO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사진제공|KOVO


● 이번 시즌 화제가 된 감독의 말은

이번 시즌 2라운드 도로공사전에서 나온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의 말은 유독 주목을 받았다. 이번 시즌 부드러운 남자가 됐다고 널리 광고하는 감독은 “예림이 좋아, 그렇게 해. 올라가면서 자신 있게 때려. 다만 2단으로 떨어질 때는 길게 때리고”라면서 고예림을 칭찬했다. 오랜 감독 생활동안 선수에게 했던 드문 칭찬에 방송해설을 하던 김사니 위원이 깜짝 놀랐다.

이 감독은 2라운드 현대건설전에서 대타 리베로로 출전해 큰 활약을 한 박상미와는 타임아웃 때마다 하이파이브도 했다.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성공한 사람이 가지는 가장 일반적인 오류는 과거의 성공법칙에 만족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세상은 바삐 움직이기에 과거에 사실이자 불변의 진리라 믿었던 것들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 최고수다.

배구 전문가들은 “타임아웃 때 감독의 말이 간단하고 적을수록 그 팀이 강팀이다. 잘하는 팀은 감독이 딱히 할 말도 없지만 못하는 팀은 이것저것 지적이 많다”고 했다. 과거에는 방송카메라를 의식해 선수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대외용 작전지시를 내리는 감독도 있었지만 이제는 팬들이 더 잘 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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