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둘의 공통점을 찾자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족적을 남기며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또 그라운드를 휘젓는 저돌적인 돌파는 40년 세월의 간극 속에서도 꼭 닮았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차범근은 한국과 아시아를 평정한 뒤 군복무를 마친 20대 중반에 독일 무대를 노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에이전트 제도가 없어 독일 교민들이 도움을 주던 시절이었다. 구단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떠난, 그야말로 축구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손흥민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0대 중반에 일찌감치 독일 무대로 향했다. 축구선수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꼼꼼한 개인 지도를 받은 덕분에 기초가 탄탄했고, 선진 프로그램이 접목되면서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차범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혈혈단신으로 떠난 차범근은 198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오직 실력으로 외국인 선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스피드와 파워, 헤딩력 등을 장착하며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9~1980시즌부터 10년간 뛰면서 정규리그 98골을 포함해 총 121골을 넣는 동안 외국인 선수 최다골 등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자기관리도 철저했다. 그 덕분에 슬럼프도 거의 없었다. 기량은 물론이고 성실한 자세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선수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끌어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을 거친 손흥민은 독일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15~2016시즌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 무대(EPL)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피드를 활용한 폭발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슈팅은 그곳에서도 통했다. 가속 페달을 밟은 듯 골 행진을 이어가면서 4시즌 동안 51골을 기록했다.
검증된 공격수 손흥민은 아직 젊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해 군 문제도 해결했다. 다만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에이스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컨디션 관리를 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기관리만 잘 한다면 30대 중반까지 뛸 수 있다. 그래서 기록행진의 한계는 없는 셈이다.
기록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다. 차범근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설은 모두 같은 반열이다. 차범근과 손흥민을 놓고 누가 더 위대한 선수냐를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 차범근은 이미 전설이고, 손흥민은 그 전설로 닮아가는 한국축구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