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2017년 신인왕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오른쪽)와 2018년 신인왕 강백호(KT 위즈). 이들은 차례로 등장해 KBO리그의 신인 관련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야구 팬에게는 큰 선물과도 같았다. 한국야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이들은 평소 돈독한 우정을 과시한다. 스포츠동아DB
이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경기장 밖으로 나오면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는 한 살 터울의 ‘절친’이다. 2017년 신인왕 이정후와 2018년 신인왕 강백호는 때로는 가벼운 농담으로 서로를 공격하지만, 때로는 진지하게 서로의 길을 응원한다. 스포츠동아는 설 연휴를 맞이해 이들의 대화를 글로 풀었다.
● 엇갈린 첫인상, 나란한 야구행로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되지만 두 선수는 스프링캠프에서 한창 시차 적응할 시기다(웃음). 설에 얽힌 추억이 있나?
이정후(이하 이) : “스포츠동아 독자 여러분들 모두 풍족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란다. 설은 딱히 기억이 없다. 지금 내가 그렇듯 아버지(이종범 LG 트윈스 2군 총괄)가 늘 스프링캠프를 떠나있었다. 야구를 시작하면서는 나도 운동을 하며 보냈던 것 같다. 대신 친척집은 평소에 자주 찾아뵀다.”
강백호(이하 강) : “나도 마찬가지다.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버지와 국내 여행을 떠난 기억도 있다. 운동을 시작한 뒤부터는 명절에도 딱히 쉰 적이 없다.”
-이정후와 강백호 모두 어엿한 KBO리그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둘이 기억하는 서로의 첫 인상은?
강 : “정후 형을 초등학교 때 처음 봤다. ‘이종범 아들이 야구를 한다’는 말에 나뿐 아니라 우리 학교 사람들 모두 놀랐다. 그런데 웬걸, 천재가 그라운드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 그림자에 가리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은 이종범 아들이 아닌 이정후 그 자체가 되지 않았나. 이기적인 유전자에 노력까지 엄청 하는 형이다.”
이 : “아 정말? 나는 초등학교 때 백호를 본 기억이 없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나보다(웃음). 휘문고 2학년 시절 연습경기에서 서울고 1학년이던 백호를 처음 봤다. 프로선수가 온 줄 알았다. ‘살벌하게’ 굵었던 허벅지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첫인상을 보고 쉽게 못 친해질 거로 생각했는데, 2016년 대표팀(제11회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친해졌다. 첫인상과 다르게 착한 동생이다.”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나란히 신인왕에 등극했는데, 서로를 평가한다면?
이 : “솔직히 나도 신인 때 어느 정도 잘했는데 백호가 나오면서 완전히 묻혔다. 첫 타석부터 홈런을 치는 임팩트를 무슨 수로 이기나. 고등학교 때부터 차원이 다른 타자라 적응하면 충분히 좋은 모습 보일 거로 생각은 했는데, 입단하고 1년 안 본 사이에 더 성장해서 나타났더라. 백호 덕에 신인 기록 대부분이 묻혔다(웃음).”
강 : “안타 기록은 못 깨지 않았나. 아니, 무슨 신인이 179개를 때리나. 매너가 없다. 너무 많이 쳤다. 억울해서 숫자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는 둘 다 매너가 없을 것이다(웃음). 각자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강 : “장타력은 내가 낫지 않나? 송구도 정후 형보다는 자신 있다. 고등학교 때 150㎞ 던졌던 건 어디 안 간다. 그런데 정후 형의 밸런스는 따라갈 수 없다. 선구안, 컨택 능력도 그렇고. 솔직히 내가 앞서는 건 파워뿐인 것 같다.”
이 : “백호는 우리나라 최고 홈런타자가 될 사람이다. 파워는 따라갈 수 없다. 파워도 파워인데, 멘탈이 가장 부럽다. 백호는 정말 능글맞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진다. 슬럼프도 훌훌 털어낸다.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선구안과 컨택 능력은 확실히 내가 더 괜찮다. 아, 외모는 확실히 내가 낫다. 백호는 듬직해서 형들이 좋아할 타입이고….”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스포츠동아DB
● 베이징 키즈, 야구인생 동반자를 꿈꾸다
-1년 터울로 데뷔했으니 야구인생의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낸다면 한국야구에도 큰 선물일 것 같다.
강 : “한 살 위에 정후 형 같은 선수가 있다는 건 내게도 축복이다. 긍정적 의미로 자극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형을 보면서 방향을 확립했고, 지난해 그대로 했을 뿐이다.”
이 : “프로에 입단할 때 ‘동년배 중 최고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솔직히 동기 중에서 지금까지는 내가 제일 나은 것 같은데, 1년 후배인 백호가 너무 대단하다. 나에게도 좋은 자극제다. ‘그래도 한 살 형인데 지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있다. 서로 친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둘은 베이징 키즈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이정후, 강백호뿐 아니라 동기들이 자리를 잡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이 : “맞다. 특히 윤성빈·나종덕(이상 롯데 자이언츠)은 올해 좋은 모습 보일 것 같다. 성빈이는 지금도 나한테 ‘너는 포크볼 하나로 잡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데 빨리 1군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백호도 그렇고, 또래 선수들이 주는 자극만큼 강한 건 없다.”
강 : “한동희(롯데), 양창섭(삼성 라이온즈) 등 입단 동기들이 1군 경험을 많이 쌓았다. 다른 해에 비해 고졸 루키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잘할 선수들이 많다. 1998~1999년생들이 KBO리그를 대표할 선수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키움 이정후(왼쪽)-KT 강백호. 사진제공|이정후
● 확실한 소망, 동반 태극마크
-이정후는 대부분 신인들이 겪는 2년차 징크스를 피해갔다. 강백호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강 : “신경이 아예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다. 올 시즌에 망하면 그야말로 큰일 나는 것 아닌가(웃음). 다른 동기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나부터 잘하는 게 중요하다. 시즌이 다가올수록 정후 형이 2년차 때 해놓은 것들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 “지난해 워낙 잘했는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 다치지 않으면 충분히 잘할 것이다.”
강 : “형은 지난해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2년차 징크스가 두렵지 않았나?”
이 : “지난해 인터뷰 때마다 ‘2년차 징크스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실은 걱정이 됐었다. 슬럼프에 빠질 때면 다쳐서 2군에 내려가서 시간을 벌었다(웃음). 진지하게 말하자면,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누구나 부진하는 시기가 있다. 그때 ‘2년차 징크스인가?’라고 생각하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스스로를 죽이는 생각이다. 나는 슬럼프 때마다 (김)하성이 형이 도움을 줬다.”
-각각 3년차, 2년차다. 올해 목표는?
강 : “2년차 징크스에 빠지지 않는 것?(웃음) 이제 신인이 아니다. 지난해는 ‘신인빨’이 있었다면 이제 동등한 프로 선수가 됐다고 생각한다. 같은 위치에서도 ‘잘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이 : “나는 다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지난해 부상을 겪으면서 ‘풀타임 출장’에 대한 욕심이 강해졌다.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어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KT 강백호(왼쪽)-키움 이정후. 스포츠동아DB
-오글거리는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서로에게 설 덕담 한마디씩 부탁한다.
강 : “지난해에 나와 동기들이 1군에서 뛸 수 있었던 건 전부 정후 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벽을 정후 형이 뚫어줬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나는 그걸 이어간 것뿐이다. 그뿐 아니라 평소에 정말 잘 챙겨준다.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 : “다소 영혼이 없는 멘트 같다(웃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백호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다. 내가 1루에 살아나가고 백호가 나를 불러들인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하지만 지금 팬들 앞에는 ‘이정후와 강백호의 동반 성장기’라는 또 하나의 스토리가 놓여 있다. 이들이 기대대로 성장한다면 수십 년 뒤 “이정후, 강백호가 신인일 때부터 지켜봤다. 선의의 경쟁이 정말 대단했다”라고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대기록들을 써내려갔지만 그 스토리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