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해피존] 인도 크리켓과 KBO리그

입력 2019-04-0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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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크리켓은 영국 귀족들의 스포츠였다. 단정한 옷차림, 경기 중에 티타임이 있고 최장 5일 동안 승부가 이어지기도 했다. 규칙과 경기진행 방식 등이 야구와 형제처럼 가까운 종목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낯설다. 무시할 수 없는 선입견은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경기 시간이었다.

그러나 인도 크리켓 경기장에서는 지금까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3시간이면 끝나는 짜릿한 경기, 치어리더와 불꽃놀이 화려한 율동까지. 인도프리미어리그(IPL)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뜨거운 스포츠다.

IPL은 2017년 기준 전 세계 스포츠리그 중 평균연봉 3위(약 387만 달러)를 기록했다. 1위는 미국프로농구(NBA), 2위는 메이저리그(MLB)다.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의 자부심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보다도 높은 평균연봉을 자랑한다. 이 바탕에는 폭발적인 흥행이 있다. 연간 약 14억 명의 시청자가 IPL를 TV로 즐긴다. 2018~2022년 TV·디지털 중계권이 무려 269억 달러에 판매되기도 했다. 약 3조520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IPL은 한 해 60경기만 치른다. 경기당 중계권료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IPL 중계권은 21세기 폭스와 소니TV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페이스북도 디지털 중계권 계약을 원했다. 21세기 폭스의 자회사 스타 인디아가 거액을 투자하면서 승자가 됐다.

IPL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스포츠 컨텐츠가 됐을까. 첫 번째는 국제경쟁력이다. 1983인도 대표팀은 영국 크리켓의 성지 로드구장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식민지였던 인도가 영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 전 인도가 열광했다. 1987년에는 월드컵을 개최했고, 2011년 다시 정상에 올랐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크리켓 국제경기는 축구 한일전에 버금갈 정도로 양국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전이 펼쳐진다.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의 활약은 곧장 리그 흥행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빠르게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인 유연함에 있다. 영국은 크리켓의 대중화를 위해 2003년 T20경기를 선보였다. 그동안 국제대회가 50오버(오버당 투구수 6개로 최대 300개)제한 경기였는데 이를 20오버까지 더 낮춘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최대 투구수가 120개로 야구보다도 오히려 빨리 끝나는 크리켓이 출연한 것이다. 격렬한 반대가 이어졌지만 인도는 2008년 자국 리그에서 T20을 도입했다. 이후 IPL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갈림길에 서 있는 KBO리그에 IPL은 모범답안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대회 경쟁력을 통한 국민스포츠로 확고한 위치에 올랐고, 두려움 없이 파격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였다. 가파른 성장 속에 리그는 완전한 산업화에 성공했다. IPL의 도전정신은 야구로 치면 7이닝경기를 도입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여러 실험을 느릿느릿 쫓아가는 것도 망설이는 KBO리그에는 이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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