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천문’, ‘상상의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까닭은?

입력 2019-12-2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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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실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이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오프닝 장면에 넣은 자막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인으로 꼽히는 세종과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이지만 유독 ‘상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잘 알려진 실존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때때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려왔다. 사실에 기반해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창작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날선 지적과 공격에 시달리기도 한다. 역대 최고 흥행작인 ‘명량’은 물론 최근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도 비껴가지 못했다.

‘천문’은 역사가 채 기록하지 않은 위인들의 뒷이야기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제작진은 상상을 동원해 창조한 이야기인 만큼 역사적인 잣대로만 바라봐주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드라마틱한 상상은 ‘천문’을 웰메이드 사극으로 만든 미덕이기도 하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같은 꿈을 꾼 동료이자 벗으로 그리면서 뭉클한 서사 구축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는 조선의 독립적인 시간과 천문 연구를 꿈꾼 세종과 그 꿈을 실현한 장영실이 20여 년간 이룬 위대한 업적을 따라가면서도 임금과 관노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두 인물의 믿음과 존경, 사랑에 집중한다.

영화의 출발은 갑자기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제작진의 호기심이었다.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임금의 가마인 안여가 부러지고 허물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감독한 장영실을 곤장 80대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마지막으로 장영실은 역사적 기록에서 자취를 감춘다.

허진호 감독은 “신하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능력이 있다면 중용해온 세종이 ‘왜 장영실을 역사에서 사라지게 했을까’라는 상상과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앞서 ‘덕혜옹주’를 통해서도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감독은 “실제 벌어진 일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상상력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있는 사실 그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도 재미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빈틈을 극적인 상상으로 대체하는 작업은 배우를 자극시키는 동력이 된다. 세종 역을 연기한 한석규는 “세종은 왜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했을까, 세종은 우리의 것을 중요하게 여긴 진짜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다”고 밝혔다. 2011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세종 역을 연기한 그는 “당시 드라마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과연 세종과 장영실은 어떤 관계였을까 궁금했다”며 “그 상상을 이번 영화로 채울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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