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스트레일리. 스포츠동아DB
선발투수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지표는 다양하다. 그 중 평균자책점(ERA), 이닝, 삼진,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 등은 투수 본인의 기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표다.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위 또는 어떤 구종이든 원하는 코스에 던질 수 있는 커맨드를 지니고 있다면 이 수치는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승리는 다르다. 투수의 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계투진의 안정감과 타선의 득점지원 등 여러 요소가 뒷받침돼야 따라온다. 투수 본인의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기록이다. 10승, 15승, 20승 등의 숫자에 큰 의미를 두는 이유도 그래서다. ERA, 이닝, 삼진, QS 등의 지표가 좋고 승수까지 순조롭게 쌓는다면 자연스레 ‘좋은 투수’로 불린다. 반대로 ERA 등에선 상위권이라도 승수가 적다면 ‘불운한 투수’라는 꼬리표가 붙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댄 스트레일리(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KBO리그 대표 ‘불운의 아이콘’이다. 소위 ‘역대급’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올 시즌 9경기에 선발등판해(55.2이닝) 5차례의 QS를 작성하며 ERA 2.10, 62삼진, 이닝당 출루허용(WHIP) 1.01, 피안타율 0.199의 강력함을 뽐내고 있으나 단 1승(2패)에 그치고 있다. 최근 3연속경기 7이닝 2실점 이하의 QS+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운은 따르지 않았다.
타선의 득점지원이 문제다. 교체되는 상황에서 팀이 리드하고 있어야 승리투수 요건이 성립되는데, 좀처럼 타선이 터지질 않는다. KBO리그 공식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롯데 타선은 스트레일리가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1.22점만 뽑아냈다. 22일까지 올 시즌 리그 전체 선발투수들이 받은 평균 득점지원(3.57점)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지표에서 리그 상위권에 올라있음에도 승수 쌓기는 고사하고, 본인이 등판한 경기에서 팀 성적 또한 5승4패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난 5년간(2015~2019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가장 적은 득점지원을 받았던 선발투수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스트레일리는 불운하기 그지없다. 2015년 조쉬 스틴슨(KIA 타이거즈·3.00), 2016년 조쉬 린드블럼(롯데·2.97점), 2017년 라이언 피어밴드(KT 위즈·2.27점), 2018년 이재학(NC 다이노스·2.59점), 2019년 제이콥 터너(KIA·2.21점)가 가장 적은 득점지원을 받았는데, 스트레일리와 비교하면 행복한 수준이었다.
더욱이 역대로 1점대의 득점지원을 받았던 투수는 2012년 이용찬(두산 베어스·1.92점)과 송승준(롯데·1.96점) 이후 한 명도 없었다. 2012년 27경기(182.2이닝)에서 ERA 2.66, 210삼진을 기록하고도 9승(9패)에 머물려 최악의 불운에 울었던 한화 이글스 류현진(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당시 득점지원도 2.30으로 지금의 스트레일리보다는 나았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