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또 외면,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의 고통을 가중시킨 침묵의 카르텔

입력 2020-07-05 18: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故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슴. 사진제공|故 최숙현 선수 유족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전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은 지난달 26일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 따르면 ‘그 사람들’이란 전 소속 팀(경주시청) 지도자(감독, 운동처방사) 및 선배들(2명)이다. 고인은 지속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뒤늦게 사건이 공개되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스포츠 인권 문제를 문화체육관광부 최윤희 제2차관이 직접 챙기라”고 지시했다. 문체부는 최 차관을 단장으로 한 특별조사단을 꾸렸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진상규명 및 사고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선수가 몸담았던 트라이애슬론 팀은 2013년 경상북도체육회에서 경주시청으로 소속이 변경됐다. 그런데 주 시장이 언급한 강력한 조치 및 예방책이 기가 막히다. 팀 해체다. 주 시장은 “선수단이 경산에 숙소를 두고 훈련했다. 팀 내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철저히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팀 해체라는 명분 없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체육계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학교 폭력에 학교를 폐쇄하고, 직장 내 따돌림에 직장을 없애는 조치와 똑같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위축된 아마추어 스포츠의 팀 해체는 종목과 규모를 떠나 치명적이다. 인프라는 더 쇠퇴하고, 잘못 없는 현직 선수들마저 은퇴 기로에 선다. 최고의 선수를 꿈꿨던 고인이 이를 바랐을 리 없다.

고인의 간절한 도움요청을 외면한 배경도 짚어야 한다. 유족에 따르면 최 선수 부모는 2월 경주시를 찾아 딸이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알렸다. 3월에는 고인을 괴롭힌 이들을 고소했다. 대한체육회도 4월 사건을 접수했다. 그런데 4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른 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징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은 팀에 남았다.

심지어 최 선수의 주변을 입막음하려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침묵의 카르텔이 아까운 청춘을 짓밟았다. 한 체육인은 “폭행·성폭력은 수사 상황과 관계없이 증거가 분명하다면 직무에서 빼는 것이 옳다. 억울한 사례도 있겠으나 최대한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다.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영구 제명’이 가능하다. 규정 제24조 우선 징계처분에 따르면 ‘혐의자의 징계사유가 인정되면 관계된 형사사건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거나 수사기관이 수사 중이라도 징계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명시됐다. 이와 함께 또 다른 피해를 주장하는 일부 선수가 국회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