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한계 변명은 그만…스포츠 현장, 인권침해에 관용 없어야

입력 2020-07-0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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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감독과 팀 닥터라고 불린 치료사, 선배 선수의 가혹 행위, 추가 피해 진술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인 고 최숙현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 지도자들과 선배선수들의 가혹행위와 폭행·폭언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졌다. 가해 혐의자들은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영구제명’과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받았고, 별개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고인의 외로웠던 죽음에 공감한 동료들이 입을 열면서 충격적 사례들이 계속 공개되고 있다. 성인들이 모인 직장운동부는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감독 이상의 권력을 휘두른 무자격 운동처방사가 오랫동안 선수들을 괴롭힌 사실도 드러나 당혹감을 더했다.

이 사태의 핵심은 크게 2가지다. ▲가해 혐의자들의 끔찍한 행위 ▲시스템 및 구조의 문제 등이다. 경주시청에서 극한의 고통을 경험한 최 선수는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체육계의 견고한 카르텔을 넘지 못했다. 어느 곳에서도 따뜻한 위로, 자신을 괴롭힌 이들이 벌을 받을 것이란 믿음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골든타임은 있었다. 2월 가해 혐의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던 최 선수가 4월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협회에 신고했을 때 곧바로 문제의 인물들의 접근을 막았다면 결말이 달랐으리란 지적이 많다. 그런데 이럴 때면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변명에 불과하다. 조사 종료까지 한시적으로 직무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모 종목에서 선제적으로 조치한 사례도 있다.

다른 사태도 아닌 인권침해다. 선배선수가 후배를 폭행하고, 서로 성추행하고, 지도자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몸을 더럽히는 따위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마다 “엄중 대처하겠다”고 약속한 체육계다. 더욱이 지금은 인권이 중시되는 시대다.

결국 시간을 번 가해 혐의자들은 최 선수 측에 접근해 회유를 시도하는 한편 주변 선수들의 입막음에 나서 불리한 증언을 막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수많은 증거를 확보한 공정위에서도 역시나 서로 입을 맞춘 듯 초지일관 같은 답변만 늘어놓았다.

이와 함께 최 선수 사태를 계기로 다른 종목들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트라이애슬론은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이다. 그곳에서도 경주시청은 사각지대와 다름없었다. ‘그들만의 세상’이 열리기 쉬운 구조다.

실제로 체육회는 전 종목, 전 운동부(실업·아마추어 포함)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의 의지를 갖고 있다. 지난해 초 체육계 전반에 걸친 번졌던 ‘미투(Me Too)’ 운동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그나마 다행이다. 단, 단순 실태조사에 그쳐선 안 될 일이다. 과거 사례뿐 아니라 지금껏 드러나지 않은 곳까지 훑는 정성이 필요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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