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생애 첫 여권과 해외리그, 흥국생명 브루나의 고군분투기

입력 2021-02-25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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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흥국생명-GS칼텍스전 때다. 개막 10연승을 달리던 흥국생명이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1세트 시작 직후 흥국생명 외국인선수 루시아가 어깨 이상으로 물러난 영향이 컸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흥국생명은 외국인선수의 부재를 크게 적정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교체도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루시아가 완치돼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아쉽게도 루시아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플랜B가 필요했다. 2018~2019시즌 GS칼텍스에서 활약한 알리를 비롯해 여러 후보들을 염두에 두고 접촉했지만 올 수 없는 형편이었다. 눈높이를 낮추고 낮춘 끝에 결정된 브루나였다.

브루나는 한 번도 해외리그를 경험한 적이 없어 말 그대로 미지수였다. 태어나 처음 여권을 만든 브루나가 대한민국에 도착하기까지 흥국생명은 마음을 졸였다. 브라질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항공편이었다.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프랑크푸르트공항은 지하철로 이동하는 복잡한 곳이다.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브루나가 혼자 비행기를 잘 갈아타고 제때 도착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국제미아가 되는 불상사까지 내심 적정했다.



다행히 브루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던 1월 8일은 중부지방에 폭설대란이 났다. 흥국생명 김여일 단장은 공항으로 마중 나가는 프런트 직원에게 따로 롱패딩 코트를 준비시켰다. 한국과 브라질은 정반대의 기후인데 혹시라도 브루나가 한국의 추위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올까 걱정해서였다. 탈 없이 도착한 브루나는 구단이 마련해놓은 펜션으로 이동했다.

격리기간 동안 천천히 몸을 만들라고 펜션에 운동기구까지 준비해놓았지만 허사였다. 브루나는 다음날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그는 다행히도 열흘 만에 퇴소했다. 다시 몸을 만들어야 했다.

당초 구상한 준비과정이 엉클어져버린 가운데 흥국생명도 내우외환으로 흔들렸다. 1월 26일 GS칼텍스와 4라운드 경기 때 선을 보인 브루나는 모든 것이 어색해보였다. 포르투갈어밖에 하지 못해 선수들과 의사소통조차 힘들었다. 브라질과 한국의 배구 스타일도 달랐다. 세터가 올려주는 공의 스피드와 높이에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서두를 일도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팀은 연패에 빠졌다. 브루나가 보여준 것이 없자 성급한 이들은 ‘무늬만 용병’이라고 비난했다. 19일 KGC인삼공사전에서 30점을 뽑자 비난이 찬사로 바뀌었지만, 24일 IBK기업은행전에선 다시 11득점에 그쳤다. 그만큼 아직은 계산이 서지 않는 선수다. “한 세트에 5~6점만 해주면 좋겠다”는 내부의 바람이 가장 객관적 기대치다. 박미희 감독은 “축구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중심이동이 좋다.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브루나에게는 이번이 배구인생에서 엄청난 도약의 기회다. 세계적 선수 김연경과 한 팀에서 뛰면서 V리그의 압박수비를 이겨내는 공격방법을 배우고, ‘봄 배구’의 치열함까지 경험하면 한 뼘 더 자랄 수 있다. 1999년생으로 이제 22세. 한창 배구를 알아갈 나이다. 브루나가 만들 V리그 적응 스토리는 봄 배구에서 완성될 전망이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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