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사커] 월드컵 예선 앞두고 점점 커지는 감독 리스크

입력 2021-03-28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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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가 2019년 1월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했던 때로 돌아가 보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끈 한국대표팀은 59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렸지만 준준결승에서 카타르에 0-1로 지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공격 작업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기회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앞으로도 지금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당시 한국은 느린 빌드업 과정과 비효율적인 공격 작업, 그리고 플랜B의 부재 등이 지적됐다. 또 아시아축구에 대한 벤투 감독의 이해 부족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벤투 감독에겐 크게 와 닿지 않은 듯했다. 대한축구협회 김판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결산 기자회견을 통해 “효율성 측면에서 이기는 경기를 지향하지 못했다”며 반성했을 뿐이다.

25일 원정으로 열린 80번째 한·일전(0-3 패)은 명분도, 실리도 잃은 한국축구 치욕의 날이다.

패인을 보면 2년 전 아시안컵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의미한 빌드업이나 비효율성, 플랜B의 부재가 되풀이됐다. 물론 일본축구가 잘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몇 가지가 추가된다. 선수 선발을 포함한 선수단 관리다. 즉, 벤투 감독의 리더십에 커다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이번 한·일전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굳이 원정 경기를 해야 하느냐는 국민청원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위태로운 도쿄올림픽의 대외 홍보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겠다”며 한·일전의 명분을 분명히 했다. 확대되던 논란도 ‘월드컵’이라는 말에 정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대표팀의 행보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부상을 당한 손흥민(토트넘)을 소집 명단에 올리는 가하면 선수들의 현재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또 K리그 특정 구단 선수를 집중적으로 선발하면서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사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5일 이상 자가 격리가 되면 구단이 소집을 거부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K리그 구단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선수를 대표팀에 보냈다. 또 한·일전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참았다. 그런 걸 이해했다면 벤투 감독이 구단에 먼저 손을 내밀고 예의를 갖춰야했다.

결과라도 좋았으면 명분은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강인을 중심으로 한 제로 톱 전술은 최악이었고, 90분 내내 경기력은 엉망이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한·일전에서 졌다고 사과문을 낸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의미다. 정 회장은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 전력을 다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해 한·일전이란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기를 추진했다”면서도 “이번 패배에 대해 벤투 감독에게만 비난이 쏠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최상의 상태로 경기를 치르도록 완벽하게 지원하지 못한 축구협회의 책임이 더욱 크다”라고 했다.

진짜 걱정은 6월 열릴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과 최종 예선이다. 지금과 같은 벤투 감독의 리더십이라면 월드컵도 불안하다. 선수 파악과 선발, 소집, 훈련, 실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경기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된 2차 예선 H조 잔여 경기를 6월 국내에서 여는 한국은 투르크메니스탄전(6월 3일)을 시작으로 스리랑카(7일), 북한(11일), 레바논(15일)과 잇달아 경기를 갖는다. 한 경기를 덜한 한국은 현재 2승2무(승점8)로 투르크메니스탄(승점 9)에 이어 조 2위이긴 하지만 레바논과 북한도 승점이 같은 8점이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2차 예선 이후엔 최종 예선을 통과해야 비로소 본선이다.

이번 한·일전은 감독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어영부영 넘어가서는 안 된다. 논란이 된 과정들을 되돌아보면서 잘못된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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