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현 감독 “우린 선수, 학교, 동문이 하나로 똘똘 뭉쳤다”
1945년 개교와 함께 축구부를 창단한 한양공고는 자타공인 전통의 명문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대회에서 숱한 우승을 차지하며 명성을 쌓았다. 고교축구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진학을 앞둔 선수라면 누구나 가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무수한 별들도 배출했다. 한국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과 처음 인연을 맺은 1954년 스위스월드컵의 출전 선수 20명 중 강창기(1회), 함흥철(2회), 우상권(3회) 등 주축 멤버 3명이 한양공고 출신이었다. 축구선수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물론 국가대표팀과 프로팀의 감독을 역임한 최은택(12회), 1960~1970년대 한국축구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치고 대표팀 사령탑으로 월드컵에도 출전했던 김정남(15회), 그리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위를 선양한 박수일(15회), 최길수, 이세연(이상 17회), 신현호(25회) 등도 한양공고를 나왔다. 2000년대 폭발적 인기를 모은 이관우(48회)도 동문이다.
하지만 근래 고교축구에 찬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한양공고도 적잖은 풍파를 겪었다. 우승이 뜸해졌다. 한 해 최대 4~5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지만, 정상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96년 춘계연맹전 우승 이후 8년 만인 2004년 청룡기대회 정상에 올랐다. 2013년 백록기대회를 품기까지는 또 9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 8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양공고는 2일 경북 안동에서 막을 내린 제45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에서 대구공고를 4-3으로 꺾고 정상에 등극했다.
명가 재건의 깃발을 높이 든 지도자는 손정현 감독(42)이다. 2019년부터 지휘봉을 잡아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그도 한양공고 출신(50회)이다. 손 감독은 “정말 부담이 많았다. 전통의 명문이지만 그동안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며 “이번에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워서 많이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가장 고생한 건 선수들이다. 모교에 큰 기쁨을 안겨준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손 감독이 꼽은 우승의 원동력은 크게 2가지다. 우선은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쳤다. 3학년 주전 4명이 결승전을 뛰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2학년들이 잘 받쳐주면서 힘을 발휘했다. 손 감독은 “원 팀의 승리”라며 미소 지었다.
두 번째는 주위에서 많이 지원해줬다는 점이다. 손 감독은 “교장, 교감 선생님, 체육부장님을 비롯해 많은 학교 관계자분들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셨고, 또 축구발전위원회의 도움도 컸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학부모님들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정말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이번 우승은 동문들이 다시 한번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손 감독은 “많은 동문 선배님들이 경기장을 직접 찾아와 응원해줬다. 또 우승을 하자 ‘학교를 위해 이렇게 큰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연신 하셨다”며 우승 이후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학원축구는 침체기다. 2000년대 들어 전통의 명문들은 프로구단 산하 유스팀에 밀려났다. 학교와 유스팀이 함께 출전하는 대회에선 여지없이 유스팀이 정상에 올랐다. 이번 시즌 K리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수원 삼성 ‘매탄소년단’의 매탄고도 프로 산하 유스팀이다. 포항제철고, 울산현대고, 광양제철고 등이 명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손 감독도 이런 추세를 인정한다. 그는 “현장에서 눈에 띄는 선수를 스카우트하려고 하면 이미 프로 산하 팀에서 점찍었다고 하더라. 유망주들도 유스팀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훈련 시스템이나 여러 환경들이 좋은 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학원축구만의 장점도 분명 있다. 그는 “학원축구에 와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선수들도 있는데, 오랜 전통과 수많은 동문들 덕분에 자부심을 갖고 뛰는 선수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힘주어 말했다. “선수들도 유스팀과 맞붙으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는 손 감독은 “이기고 싶은 선수들의 도전정신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한양공고의 올해 목표는 ‘2관왕’이다. 이미 하나는 챙겼다. 손 감독은 “올해 출정식에서 2관왕을 목표로 내세웠는데, 첫 번째 열린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앞으로 2~3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 다음달 열리는 대통령금배는 프로 유스팀들도 출전한다. 거기서 우승하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