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바퀴벌레 들끓는 곳…표심 몰이 용도였던 사직구장, 부산시는 달라질까

입력 2021-06-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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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직구장. 스포츠동아DB

2021년. ‘레트로’가 유행이지만 사직구장은 너무도 복고풍이다. 지금도 날씨가 조금만 습해지면 관중석에 바퀴벌레가 출몰하고 악취가 진동한다. 개선할 수 있는 주체는 정치권인데, 언제나 선거철 표심 잡기 용도로만 사직구장을 활용할 뿐 변화는 없었다. 농구단의 연고 이전으로 자존심을 구긴 ‘구도(球都)’ 부산, 이제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이병진 행정부시장 등 부산시 인사들은 23일 사직구장을 찾아 롯데 자이언츠 이석환 대표이사, 성민규 단장 등 수뇌부와 간담회를 했다. 부산시는 최근 지역 프로스포츠구단을 순회하고 있다. 이달 초 프로농구 KT가 부산에서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기며 ‘소통 부족’을 이유로 들었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병진 부시장은 “KT 농구단 이전의 충격이 생각보다 크다. 이를 계기로 부산을 스포츠도시로 만들려고 한다. 그동안 프로구단의 애로사항 등을 청취한 적이 없다. 시에 이야기하는 부분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직구장 근처를 ‘스포츠 클러스터’로 조성할 것이다. 늦어도 2주 안에 박형준 시장이 ‘부산시 스포츠산업 발전 종합계획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석환 대표는 “팬들이 사직구장을 찾을 때 쉴 공간이 부족하다. 관전의 편의성도 아쉽다. 부산시가 야구장 건축에 신경써준다면 우린 경쟁력 있는 구단, 이기는 팀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병진 부산시 행정부시장(오른쪽)이 23일 사직구장을 찾아 롯데 이석환 대표이사, 성민규 단장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제공|부산시



이 대표가 완곡하게 얘기했을 뿐, 1985년 개장한 사직구장은 KBO리그 9개 구장 중 최악의 시설로 악명이 높다. 야구장에 바퀴벌레가 매일같이 나오는 실정이다. 광주, 대구, 창원, 대전이 차례로 신구장 건설을 완료했거나 돌입했으며 열악한 잠실구장 원정 라커룸도 올 시즌 후 개선될 예정이다. 반면 부산시는 미적지근했다. 전임 시장 시절에는 롯데 측에서 구단 예산을 들여 경기장을 개·보수하겠다고 나섰음에도 허락하지 않은 적까지 있다. 사직구장의 관리주체는 부산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다. 시에서 승낙하지 않으면 롯데로서도 재간이 없다.

‘인프라 전도사’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24일 스포츠동아와 통화에서 “부산시가 선거철이 아님에도 롯데를 비롯한 구단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부산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깨달아야 한다. 구도의 자존심을 부산 팬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통의 지자체는 시·도민들의 최대 엔터테인먼트 수단 중 하나인 프로구단을 품을 자격이 없다. KT 농구단이 ‘천도’하면서 구도의 자존심에 생채기가 단단히 났다. 이제라도 움직이니 다행이다. 부산시의 달라진 행보가 발걸음에만 그쳐선 안 되는 이유다.

선거철에만 사직구장과 부산 팬들의 열정을 언급하고 당선 후에는 감감무소식이었던 정치인들. 부산 팬들은 십수 년 전부터 이골이 났다. 지금껏 ‘보여주기식’ 공염불에 지쳤다. 박 시장의 당선 직후 달라진 집행부가 이번에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간낭비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직|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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