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만의 경사와 ‘7만분의 1’의 기적, 이게 올림픽의 진짜 재미

입력 2021-07-27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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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딜린 디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20도쿄올림픽 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206개 회원국 중 금메달이 하나도 없던 나라는 정확히 100개.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98개국으로 줄었다. 첫 금메달이라는 국가적 경사를 따낸 나라가 두 곳 있기 때문이다.

버뮤다의 플로라 더피(33)는 27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여자 개인전에서 1시간55분36초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버뮤다에서 하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것은 최초의 ‘사건’이다. 색깔을 떠나 메달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1976년몬트리올대회 복싱에서 클래런스 힐이 따낸 동메달이 유일했다. 더피는 금메달을 따낸 뒤 “지난 1년 동안 중압감이 심했다. 정말 힘들었다. 개인의 꿈이기도 하면서 국가의 첫 금메달이다. 흥분된다”고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더피의 올림픽 출전은 네 번째. 종전 2016리우데자이네우대회 8위가 최고 성적이었으나 이번에 역사를 썼다. 북대서양 서부에 위치한 버뮤다는 인구 7만 여 명의 작은 나라다. 관광업과 임대업이 발달해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지만 스포츠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버뮤다의 이번 올림픽 출전 선수는 단 2명. 트라이애슬론 금메달리스트 더피와 더불어 다라 알리자데가 조정 종목에 도전장을 냈다. 2명이 나서 금메달 1개를 수확했으니 ‘가성비’는 만점이다.

버뮤다보다 하루 앞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 나라가 있었다. 주인공은 필리핀.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가 26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합계 224㎏(인상 97㎏·용상 127㎏)를 들어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2016리두데자네이루대회 은메달 아쉬움을 달랜 포효. 이로써 필리핀은 1924파리대회 첫 출전 이후 97년 만에 금메달을 수확하게 됐다.

필리핀 스포츠의 역사가 달라진 것은 물론 디아스의 삶도 하루아침에 바뀌게 됐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디아스는 물 40리터를 지고 매일 수백 미터를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농부, 어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디아스 포함 6남매를 부양하고자 했다. 2016년 올림픽 은메달을 땄음에도 2년 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바람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인생. 실제로 필리핀에서는 단막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환히 웃을 수 있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물론 굴지의 기업들이 그에게 3천300만 페소(약 7억5000만 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말 그대로 국민영웅이 되어 추앙받을 일만 남은 셈이다. 올림픽은 이처럼 승패 이면에 숨은 재밌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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