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야하는데”… 실수요자들 ‘패닉’

입력 2021-08-25 1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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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에 주택담보대출 중단하는 은행들
NH농협, 11월30일까지 신규대출 금지
SC제일·우리銀도 일시적 중단
타 금융사들도 선수요 폭발 우려
“전세시장 특수성 고려 안해 혼란”

사진=뉴시스


올해 2분기 가계 빚이 사상 첫 1800조를 돌파하는 등 계속되는 가계부채 폭증에 정부가 대출 규제에 나선 가운데, 일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대출까지 틀어막으면서 당장 가을 이사시즌을 앞두고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잇따라 중단

시작은 NH농협은행으로 11월 30일까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한다. 증액이나 재약정도 포함이다. 주택을 비롯해 토지 등 비주택 담보도 취급하지 않는다. NH농협은행이 대출 중단을 선언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계대출의 연간 목표치를 이미 달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126조3322억 원이던 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 135조3160억 원으로 7.1% 늘었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연간 대출 증가액 목표치를 5%로 제시한 바 있다. 농협중앙회도 27일부터 지역 농·축협에서 준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전면 중단한다.

이밖에도 SC제일은행은 대표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퍼스트홈론 기준금리 중 신잔액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한해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의 신규 취급을 9월 말까지 일시 중단한다. 이 경우 기존 전세대출 신청 취소 분이 나오면 신규 취급이 가능하다.

이처럼 정부가 가계대출을 전방위적으로 막고 있는 이유는 급증한 가계부채가 부실화돼 추후 금융시스템의 뇌관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특히 26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존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한몫했다.

풍선효과로 마이너스 통장 급증
하지만 이번 대출 중단 사태에 대해 여러 부작용 양산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다. 먼저 이미 중단된 대출로 인한 타 금융사로의 풍선효과가 우려된다. 금융당국은 이번 대출중단 사태는 금융사들이 올해 증가분 목표를 준수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자체적인 조치로, 아직 한도에 여유가 있는 타 금융사들까지 대출중단을 할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 미리 대출을 받아두려는 가수요가 폭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17~20일 주요 5대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신규건수는 7557건으로, 전주 대비 33.25%(1886건)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은행에서 대출을 중단한다고 해서 수요 자체가 줄지는 않는다”며 “일부 은행에서 대출이 막힌 대출자들이 타 은행으로 옮겨가고 있고 선수요가 몰리면서 대출 증가분 한도가 소진되면 타 은행들도 대출중단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놓는 각종 대출 규제가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근본적인 원인이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음에도, 집값 상승의 책임을 투기세력에게 돌려 대출 규제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잘못된 처방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대출규제로 실수요자들이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는 점이다, 가을철 이사를 앞둔 직장인 A씨(36)는 “지난주 집 매매 가계약을 했고 10월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전세자금대출이 막혀 큰일이다. 대출이 더 막히기 전에 미리 대출을 확정할 수 있는 금융사를 찾고 있다. 시중은행이 안 된다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알아보고 있다”며 전전긍긍했다.

이밖에도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출이 막힐 경우 제2금융권을 넘어 불법 사금융으로 손을 뻗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불안심리를 자극해 풍선효과가 나타나거나 우회로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나갈 것” 등 걱정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리스크와 기회를 판단해 자금 운용을 할 자유가 있다”며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 글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 “일방적 대출 중단은 곤란”

전문가들 역시 급증한 가계부채를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천편일률적으로 총량을 줄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가계부채 관리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까지 모두 전방위로 조일 경우 정작 자금이 꼭 필요한 실수요자들만 애꿎은 폭탄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갑작스런 대출 규제로 인해 자금계획을 세워 대출을 받으려던 개별주체들이 모두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특히 국내 전세시장의 경우 전세금이 집주인과 기존 세입자, 새로운 세입자까지 모두 연쇄적으로 물려있는 특이한 구조인데 정부는 이런 특수성도 감안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려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또 일각에서는 실수요자와 투기세력을 정밀하게 발라낸 세심한 정책이 어렵다면, 적어도 자금계획을 세우는데 있어 예상가능한 점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정욱 기자 jja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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