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그 쓸쓸함과 그리움”…천지윤 ‘잊었던 마음 그리고 편지’ [나명반]

입력 2022-02-09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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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색을 가진 악기, 해금.

해금연주자 천지윤의 ‘잊었던 마음 그리고 편지’는 20세기 한국의 작곡가 김순남(1917~1983)과 윤이상(1917~1995)의 가곡을 해금으로 재해석한 앨범이다(피지컬 음반은 2CD로 제작).

‘노래를 연주’했지만 ‘연주를 노래’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천지윤은 “내 생애 어떤 지점에서 소환해 낸 김순남과 윤이상은 내 음악적 발걸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순남은 내 마음에 스민 상처와 아픔을 끄집어내고 깊은 위로를 건넨다. 내 안에 고인 눈물을 게워내게 하는 치유의 노래인 셈이다. 윤이상은 그의 생애로 증명한다. 보다 넓은 세계를 꿈꾸라고 응원과 희망을 건넨다”라고 했다.

김순남을 전반부(CD1)에, 윤이상을 후반부(CD2)에 배치한 것도 두 작곡가에 대한 천지윤의 생각을 반영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곡은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은 ‘이별의 쓸쓸함’과 ‘그리움’ 사이에 놓인, 딱 종이 한 장만큼의 간격이 있다. 김순남이 ‘이별’이라면, 윤이상은 ‘그리움’이다.

국악 연주자이지만 재즈에도 밝은 천지윤은 기타(박윤우), 클라리넷(여현우), 피아노(조윤성) 트리오와 함께 연주했다. 김순남의 곡들은 해금, 기타, 클라리넷. 윤이상의 곡은 해금과 피아노로 연주해 차별시킨 것도 흥미롭다.

‘노래를 연주’하고 ‘연주를 노래’한 곡들은 그래서 국악적이면서 재즈적이다. 국악과 재즈의 컬래버레이션, 크로스오버는 딱히 신선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행해져 온 시도이지만 천지윤의 융합은 확실히 다르게 들린다.

‘월정명(月正明)’을 플레이해 보자.

김순남의 이 노래는 달을 노래한 전통 시조다. 천지윤은 해금으로 가곡의 원선율을 연주하되 기타와 클라리넷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완성했다.



앨범 속 해금과 다른 악기들은 월정명에서처럼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마치 해금과 기타, 클라리넷이 한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달리 편곡된 악보를 앞에 두고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들의 연주는 자신들의 공간에서 각자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대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각자의 소리는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슬그머니 교차하고, 다시 또 갈라져 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공간에서 서너 발짝만 뒤로 물러나 보면 기가 막히게도 악기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음악적 효과는 말러의 교항곡을 들을 때 종종 경험했던 것 같다.

책장을 넘기듯 쓸쓸함이 조금씩 멀어져간다. 첫 곡 김순남의 ‘산유화’에서 마지막 곡 윤이상의 ‘새야 새야’까지 쓸쓸함은 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치듯 어느새 그리움으로 변해간다.

“두 작곡가와 나눈 내면의 교류는 나의 해금을 통해 무언가가 된 것 같다. 순도 높은 소리의 세계는 언어보다 명징하다. 언어가 갖는 힘이 ‘구체성’이라면 언어가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광활한 ‘상상력’이다. 나의 소리로 명징한 감동과 광활한 상상력을 선물해드릴 수 있다면 더 없는 보람일 것이다.”

‘소리’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가득한 천지윤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청자들은 이 앨범을 들으며 광활한 상상력을 얻게 될 것이다. 천지윤이 말한 무언가는 ‘無言歌·가사가 없는 노래’를 의미하지만, 우리는 정말 잊고 살았던, 반드시 기억해내야 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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