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DB
큰 경기일수록 더 강했다. 막판에 더 셌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팀이 바로 삼성화재였다. 2007~2008시즌부터 7회 연속 챔프전 우승의 대기록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승부사’ 신치용 감독의 지도력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왕조를 구축했다. 이번 시즌 V리그 남자부 7개 구단 가운데 4개 구단 감독이 당시 왕조 건설에 큰 힘을 보탠 레전드들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삼성화재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정상과 멀어졌다. 주축 선수들의 은퇴와 이적, 그리고 기대에 못 미쳤던 신인선수 수급 등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15~2016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7시즌 연속 챔프전에 나가지 못했다. 패배를 몰랐던 그들은 이제 패배에 익숙해져버렸다. 정상보다는 오히려 바닥이 더 가까웠다.
2020~2021시즌 최하위로 떨어졌다. 단 6승(30패)만 기록한 채 굴욕을 당했다. 2010~2011시즌 리그 중간에 최하위로 추락했다가 3위로 마친 뒤 포스트시즌에서 힘을 내며 챔프전 우승으로 마무리한 저력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삼성화재 러셀. 사진제공 | KOVO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한 지는 꽤 오래됐다. 이번 시즌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즌 초반은 그런대로 버텼다. 1, 2라운드 모두 3승3패씩을 하며 중위권에 자리했다. 선수들의 하고자하는 의욕도 넘쳤다. 하지만 3라운드부터 고꾸라졌다. 한번 떨어진 순위는 쉽게 끌어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 중단 이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불운도 겪었다.
부문별 팀 순위는 대부분 하위권이었다. 득점과 블로킹, 세트는 모두 7위였고, 리시브와 디그, 수비는 각각 6위를 기록했다. 눈에 띄는 건 서브다. KB손해보험에 이어 2위다. 고희진 삼성화재 감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찾아낸 승부수 중 하나였다. 외국인 선수 러셀을 앞세운 강력한 서브로 상대를 괴롭혀 그나마 14승(22패)을 챙길 수 있었다. 가까스로 꼴찌를 면하며 지난 시즌보다는 나아졌다. 하지만 6위에 만족해야하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투자 없이 결과만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선수들의 투혼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를 데려와도 소용없다. 모기업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없다면 다음 시즌의 삼성화재도 뻔하다. 명가의 재건을 보고 싶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