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를 바꾼 남자’ 박항서 “후회 없는 5년, 새로운 출발에서” [사커피플]

입력 2023-01-18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박항서 감독. 사진출처 |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SNS

베트남축구는 아시아에서도 변방이었다. 전쟁에선 미국도 괴롭힌 ‘자존심 센’ 국가지만, 축구에선 지는 게 더 익숙했다. 선수들도 깊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바꿨다. 박항서 감독(64)이 2017년 10월 지휘봉을 잡은 뒤로 베트남축구는 무섭게 성장했다. 2002한·일월드컵 국가대표팀 코치와 K리그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현 김천 상무) 감독을 거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쏟아 부은 결과였다.

선수 선발과 훈련은 물론이고 식단과 영양까지 박 감독의 관심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매순간 동고동락한 이영진 수석코치(60)와 함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밀히 관리하며 베트남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16일 태국 빠툼타니의 탐마사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태국과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씨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은 박 감독의 고별전이었다. 0-1 패배와 함께 준우승. 앞선 홈 1차전 2-2 무승부가 아쉽게 작용했다.

그래도 5년간 쉼 없이 달린 ‘베트남 박항서호’는 대성공이었다. A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지휘한 박 감독은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과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4위, 동남아시안(SEA)게임 우승 2회, 2019 AFC 아시안컵 8강 등 깊은 족적을 남겼다. AFF 대회에서도 1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2022카타르월드컵 때는 베트남축구 사상 최초로 아시아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박항서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공존한 ‘라스트댄스’를 마친 이튿날인 17일 국내 언론과 화상 인터뷰에 나선 박 감독은 “베트남과 동행은 준우승으로 마쳤지만 최선을 다했다. 이별은 마음 아파도 인생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베트남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다. 나 역시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한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물론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그에게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을 때 손을 내민 곳이 ‘감독의 무덤’ 베트남이었다. ‘딱 1년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여정이 어느덧 5년이 됐고, 돌아보니 ‘베트남의 영웅’이 됐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면서도 조심스레 행동했다. 신뢰가 쌓여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5년 계약이 마무리되면 떠나려 했다. 후회는 없다. 남은 건 다음 감독의 몫이다.”

박항서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마침표’는 찍지 않았다. 한 장이 끝났을 뿐이다. 다음 행선지를 놓고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박 감독은 ‘국내 현장 지도자’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유소년과 기술적 부분 등에서 보탬이 될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는 그는 “월드컵에 도전할 아시아국가라면 (감독을) 생각해보겠지만 날 불러주겠느냐”며 미소를 보였다.

축구계의 어른답게 한국축구를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는 ‘포스트 벤투’를 찾는 작업에 한창이다. 박 감독은 “국내에도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다. 내가 선택할 위치는 아니나 능력을 갖춘 이들이 많다. 협회도 국내 지도자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고 방패 역할도 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