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정의를 실현하려는 어느 평검사의 이야기…윤재성 장편소설 ‘검사의 죄’ [신간]

입력 2023-02-01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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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죄
(윤재성 저 | 새움)


검사의 원죄(原罪).

실체적 진실을 쫓지 못한 죄, ‘내부고발자’를 경원시하는 죄, 정의를 위한 수단으로써 위법을 저지르는 죄 그리고 정권에 따라 척결의 대상을 달리하는 죄.

윤재성의 장편소설 ‘검사의 죄’는 ‘검사의 죄’를 딛고 강력한 정의를 실현하려는 평검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는 적법하지만 느리고 힘이 약한 ‘선택적 정의’, 위법하지만 속도감 있는 ‘강력한 정의’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자 윤재성은 ‘검사의 죄’에 대해 “모호하고 폭력적인, 정의와 불의의 경계에서 죄 지은 이가 타인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폭력으로 구현한 정의는 몇 퍼센트의 불의일까. 그 의문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되었다”라고 했다.

평검사 권순조는 어릴 적, 납치당했던 보육원에 불을 질러 12명의 원생을 살해한 범죄자다. 강박과 불안에 사로잡혀 갖가지 약을 달고 사는 심신불안증 환자이기도 하다.

중앙지검의 검사(칼잡이)가 된 그의 눈앞에서 선배 검사가 피살당하고, 옛 원죄는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온다. 마침내 재계와 정계, 법조계마저 결탁한 카르텔을 상대로 평검사 권순조의 주저없는 법의 집행이 시작된다.

‘검사의 죄’는 철저하게 검사들 내부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탁월한 상상력을 조합하여 검사의 세계를 파헤친다.

주인공은 살해당한 선배 검사의 뒤를 캐면서 사건의 미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검사들의 권력구도, 좌천과 승진, 차별 받는 여성 검사, 전관예우, 브로커들, 정재계의 결탁 등도 소설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속도감과 힘있는 문체는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이 소설의 또 하나 특별한 점은 ‘검사 집단의 가족 윤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어느 집단이든 ‘가족’으로 묶이는 순간 선악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 소설의 중요 장치인 ‘동물의 세계’처럼, 함께 사냥하고 함께 나눠 먹는 시혜를 누린다. 반면 조직을 거스르는 배신자는 통영과 같은 먼 바닷가 지청으로 유배당하며 철저하게 매장된다.

그런데 가족의 일원이, 그것도 검찰의 수뇌부가 엄청난 죄를 묻고 가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갈린다. 가족의 이름인가, 윤리인가. 결국 죄의 대가도 ‘검찰 가족’이 치르게 된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속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법전과 합법’만으로는 세상의 ‘거대한 악’을 단죄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위법과 탈법,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들만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려는 목적을 향해 달린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이야 어찌 되어도 좋다’는 주인공의 견해는 현실 속 검사들도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검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정하지 않은 법집행, 답답하고 성에 차지 않는 단죄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검사의 칼끝이 척결의 대상을 달리하여, 혹시라도 평범한 당신을 향하게 된다면 어떨까. 저자는 소설을 통해 법망을 벗어난 무차별한 방법들이 당신을 지켜줄 수 있을지에 의문을 던진다.

‘검사의 죄’는 한편으로는 ‘내가 검사라면’으로 읽을 수도 있다. 기존 법의 체계를 답답해하고, 공정한 법의 집행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법체계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시원하게 단죄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원죄를 안고 사는 심신불안증환자인 평검사 주인공, 결혼을 통해 ‘계층 상승’을 하고 싶은 여성 검사, 좋은 검사가 될 거라는 출발점에서 너무 멀어진 검사장, 재벌집의 데릴사위 검사, 강직해서 결국 살해된 검사, 그를 사랑해서 매장된 검사, 브로커들. 그들은 검사이면서 동시에 마음속에 깊은 상처 하나씩을 간직한, 우리들과 같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다.

“현실의 지평을 꿰뚫는 문장을 쓰고 싶었다.”

저자 윤재성은 서울에서 출생했다. 지은 책으로 외로움을 살해하는 대행업체 직원의 이야기 ‘외로움 살해자(2016)’, 화마에 맞서는 알코올중독자를 그린 ‘화곡(2019)’을 썼다. ‘13번째 피’로 한국전자출판대상‘을 수상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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