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마시는와인]정상을넘보는맛,크뤼부르주아…샤또라까르돈

입력 2008-06-30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열세 번째 와인 과외날. 자리에 앉자마자 김은정이 “너 그랑 크뤼 알지”라고 묻는다. 크랑 크뤼라고 하면 프랑스 보르도에서 가장 좋은 와인 등급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은 그랑 크뤼 와인을 마신단 말인가.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와인 마시는 사람 중에서 그랑 크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모두가 마시고 싶어 하는 와인이잖아. 그랑 크뤼 중에서도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마고, 샤또 라뚜르, 샤또 오브리옹, 샤또 무똥 로칠드까지 다섯 개를 가장 좋은 거라고 하고 .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근데 오늘 설마 그랑 크뤼를 마시는 거야?” “그랑 크뤼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맛을 가진 와인을 하나 갖고 왔지.” 김은정은 이 말과 함께 한 병의 와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샤또 라까르돈(Chateau LA CARDONNE)’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글씨 아래에 ‘메독’이라고 적혀 있다. “메독 와인이네. 빈티지는 2001. 그런데 이 밑에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라고 적힌 건 뭐야?” “이게 바로 그랑 크뤼처럼 좋은 와인이라는 걸 나타내는 또 다른 등급이야.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그랑 크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필요가 있는데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사실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결정된 거야. 당시 나폴레옹 3세는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출품된 와인을 포도원의 지명도와 거래 가격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기도록 지시했어.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이에 당시 높은 품질을 평가받던 메독과 소떼른 지방을 중심으로 그랑 크뤼 등급을 작성했고, 총 87개의 포도원을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나눠 서열화를 시켰어.” “아∼ 그래서 라피트 로칠드, 마고, 라뚜르, 오브리옹, 무똥 로칠드가 그랑 크뤼 1등급이 된 거구나.” “네 개는 1855년 결정됐고, 무똥 로칠드는 당시 2등급을 받았다가 1973년 1등급으로 승격됐어.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무똥 로칠드를 제외하고 그랑 크뤼 등급은 이후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는 거야.” “와인 품질은 좋아질 수도, 반대로 나빠질 수도 있는 건데 이 등급에 대한 반발이 있었겠네. 또 1855년 등급 평가를 못 받은 곳도 불만이 있을 테고.” “그래서 1932년 등급을 받지 못한 샤토와 신규 샤토가 중심이 돼 새로운 등급을 도입했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게 크뤼 부르주아야. 그랑 크뤼에 들지 못했지만 그랑 크뤼에 준하는 와인을 모아서 등급을 부여한거지.” “그랑 크뤼보단 가격이 낮을 테고, 그러면서도 품질은 뛰어난 와인이란 말이구나.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밸류 와인으로 보면 되겠네.” “맞아. 크뤼 부르주아는 다시 엑셉시오넬, 슈페리얼, 크뤼 부르주아 등 3등급으로 나뉘는데 최고 등급인 엑셉시오넬은 그랑 크뤼를 넘어서는 품질을 평가받기도 하지. ‘샤또 샤스 스플린’같은 게 대표적인 거고, 우리가 마실 샤또 라까르돈은 크뤼 부르주아인데 얘도 맛이 상당히 괜찮아. 로버트 파커도 2001 빈티지에 대해선 뛰어나다고 평가한 바 있고.”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샤또 라까르돈’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적당한 탄닌과 스파이시하면서 풍부한 과일향이 입 안을 행복하게 만든다. 역시 와인은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나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