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스페어’. 감독 이성한, 주인공 정우, 임준일. 영화 제목도 감독, 주인공의 이름도 모두 낯설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반응은 남다르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에 초청돼 관심을 받더니 서울 부산 등 전국을 돌며 열린 시사회에서 호응이 좋다.
비결은 새로움이다. 대역, 와이어, 특수효과 없이 생생한 액션이 새롭고 리얼리티를 강조한 연기가 신선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배우 정우와 임준일이 있다. 친구의 장기 판 돈을 가로채 도박판에 달려가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갖고 있는 길도역의 정우. 빚에 쪼들려 장기를 팔아야하지만 미소만은 잃지 않는 광태역의 임준일. 아직 영화 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다.
하지만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듯 자유자재 호쾌한 액션을 보여준 임준일, 인생 밑바닥으로 추락한 처참함을 깊은 눈매로 말할 줄 아는 정우. 이들이 함께 뭉치면 무서울 게 없어보였다.
○ 정우 - 막장인생도 감각 있게
‘스페어’는 액션영화다. 하지만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우는 정작 발차기 한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들겨 맞고 도망가기 바쁘다. 사기꾼 역할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폼만 잡다 얻어터지고 구른다. 정우는 이 영화에서 포기와 자제라는 단어를 배웠다고 했다.
“먼저 캐스팅된 행운에 사기꾼 길도를 택하자 감독이 ‘광태가 훨씬 돋보이는 역할이다. 길도는 묻힐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길도가 더 끌렸다. 처음으로 연기해보는 주연. 당연히 욕심이 났다. 하지만 액션은 전문적인 능력이 있는 배우가 맡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도는 지금까지 했던 남성성이 강한 역할과 전혀 달랐다”고 솔직히 말했다.
황정민, 류승범, 이범수, 백윤식. 지금까지 정우와 영화에서 함께 호흡한 쟁쟁한 배우들이다. 하지만 ‘스페어’는 김수현을 제외하면 정우가 촬영장을 이끌어야 했다.
“이전에는 선배들에게 잘 묻어가는 게 많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강한 기운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스페어’는 처음으로 반대 입장이 어떤 건지 알았다. 준일이는 본격 연기가 처음이었다. 함께 호흡을 맞추다 너무 안 돼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 임준일-한국의 청룽이 되고 싶다
체격이 우락부락해 보이지도 않는다. 얼굴은 귀여움이 넘친다. 그런데 온갖 무술을 섭렵한 전문 스턴트맨 출신이다. ‘짝패’에서는 이범수의 경호원으로 무술실력 하나로 영화 끝까지 살아남는 비중 있는 역할을 해냈다.
‘스페어’는 길도로 정우를 확정하고 광태역을 찾아 나섰다. 연기는 물론 액션을 화끈하게 해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정두홍 감독이 운영하는 서울액션스쿨 소속 80명의 스턴트맨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봤고 임준일이 낙점됐다.
임준일은 한국의 토니 쟈 같은 활약이 기대된다고 하자 수줍게 “토니 쟈도 정말 영광이다. 하지만 청룽처럼 다양한 재미를 주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기가 정말 하고 싶었다. 무술이 평범한 역할 맡는데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내 능력을 숨기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스페어’에서 큰 배역을 맡자 앞이 캄캄했다. 연기를 연습하며 많이 혼나 정우 형이 밉기까지 했다. 속으로 ‘그래 영화 속에서는 내가 때리는 역할이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그런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정우와 마주보며 한참 웃던 임준일은 “솔직히 난 스스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연기자다. 하지만 모두 함께 땀 흘리며 구르고 뛰고 신나게 촬영했다. 생생한 액션 관객들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