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기 참 부끄럽지만, 결혼 16년 동안 제 힘으로 김치를 해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김치 했던 숫자를 헤아려보면, 배추김치 2번, 총각김치 3번, 깍두기 1번, 파김치 1번, 겉절이 2번 정도입니다.
물론 신혼 때는 혹시 엄마가 더 이상 김치를 안 해주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홀로서기도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치를 만들어 놓으면 왜 꼭 쓰거나, 짜거나, 아니면 색깔이 검게 변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김치 만들기를 계속 실패하니까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김치를 만들었다고 하면, 먹어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벌써 친정에서 3번이나 김치를 얻어먹었습니다. 또 김치통 바닥이 보이기 시작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급한 대로 배추 다섯 포기를 사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마음이 무겁던지 보일러실에 처박아 두었던 함지박을 꺼내는데 마치 어려운 숙제를 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어쨌든 함지박에 배추 다듬어 넣고, 소금 뿌리고, 그리고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양념은 그런 대로 흉내 낼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금에 절이는 거였습니다. 배추를 소금에 절일 때 실패를 많이 해서 이번엔 몇 시간에 걸쳐서 뒤집고, 숨이 죽었나 확인하고, 그 작업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웬만큼 된 것 같아서 일단 배추를 씻어서 헹궈놓았습니다. 시골에서 친정아버지가 보내주신 고춧가루로 양념 만들고, 버무렸더니 겉모양은 또 그런 대로 그럴싸하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맛을 살짝 보니까 좀 싱겁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소금을 겁도 없이 한주먹이나 넣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간을 봤더니 이번엔 너무 짜게 돼버린 겁니다. 하지만 그냥 버릴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통에 담아 놓았습니다. 저녁상에 올릴 것만 따로 양념을 더 했습니다.
참기름과 참깨 좀 넣어 버무려서 빨갛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상 위에 올렸더니, 중학생 아들이 그랬습니다. “엄마 이건 누구네 집에서 가지고 온 김치예요?”
제가 하도 김치를 이집 저집 걸 가져와 먹었더니, 조금만 새로운 김치가 올라오면 아들은 이렇게 김치의 ‘출처’를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응∼ 이거 엄마가 집에서 직접 한 거야∼”하고 자신 있게 말했더니 아들은 김치로 가던 젓가락의 방향을 틀어서 다른 반찬을 집어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말로는 “아휴∼ 몸도 힘든데 왜 그러셨어요” 이렇게 느물느물 넘어가려고 하는데, 그 새카만 속이 다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네가 더 힘들어 보인다.
엄마 김치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 머릿속으로 지금 그 생각하잖아!” 했더니 아들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니에요. 제가 언제 그랬어요∼” 이러면서 얼른 겉절이를 집어먹는데, 표정이 잔뜩 긴장해있습니다.
그러다 한 입 깨물어 먹더니 “어? 이거 맛있네요?” 라고 했습니다. 남편도 뒤늦게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건 누구네 김치야?” 하면서 아들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가 했다고 하니까 남편도 아들처럼 젓가락 방향을 틀더니 다른 반찬을 집어먹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노려보니까 마지못해 한 조각 먹어보고,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좀 짜다. 그리고 김치가 숨이 덜 죽었어. 너무 뻣뻣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딱 한마디 했습니다. “그냥 먹어!”
제가 김치 잘 하는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젊어지는 샘물’을 찾아서 저희 엄마 오래오래 사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부디! 우리 친정어머니,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서울 강동 | 홍영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