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김마스타] ‘장기하와 얼굴들’

입력 2009-12-13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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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치밀한 준비, 그리고 1년반의 사투
이유 있는 연기 나는 굴뚝,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을 올해 인디계가 배출한 최고의 문화상품이다



"어떤 지원이 있다면 인디밴드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을까?"

문화정책 관계자들은 음악인들에게 흔히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디음악 지원 정책도 있다"며.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딱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뜬구름 잡는 답변을 원한다면 필자는 이런 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열정이 있어도 여유가 없으면 안 된다. 여유라는 것도 어찌 보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인프라의 일종이다. 우리나라는 놀고 있는 것 같으면 죄악시하는 문화가 있어서 인디밴드 하는 사람들이 위축되기 쉽다. 이제까지 정책이 나쁘지 않다. 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대답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런 때 하나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면 그것으로 문화정책 담당자뿐 아니라 대중까지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2009년 최고의 화제를 모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소개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제 '장기하'란 이름은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장기하의 장점은 \'열정\'만을 강조한 다른 밴드에 비해 똑똑했다는 것




●'인디계의 서태지' 장기하?!

#장기하: 1982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2002년~2005년까지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다. 군 제대 후 다시 '눈뜨고 코베인'에서 활동하며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 발매해 큰 반향을 얻었다. 2009년 2월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별일 없이 산다'를 발매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뭔가 전혀 새로운 괴물이 나온 것일까? 아니다. 원래 있던 것이 때가 돼서 스멀스멀 새어나온 것이다. 그것이 장기하의 매력이고 그 황량한 가사와 무대연출 그리고 그의 안면에서 터져 나오는 포스의 근원이다. 게다가 매력적인 허름한 코드진행과 누추한 가사가 어울려 만드는 청춘예찬과 젊음의 우울한 에피소드….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솔직담백한 안목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는 꾸준한 노력일지 모른다. 나아가 장기하가 폭발한 비결은 그의 치밀한 머리에 있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음악인들도 많다. 문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과연 어떠한 준비를 했고 이를 어떻게 드러내는가다. 어쩌면 그는 가장 똑똑한 가수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벌써 1년이 넘어간다. 마왕 신해철이 진행하던 SBS '고스트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에 장기하의 음악이 한 시간에 세 번이나 방송되기 시작한 날로부터 불과 며칠 전이었을 것이다. 동네 후배 하나가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다.

"이 노래 들어봤어요?"

그리고 그의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정확하게 다섯 번 연속으로 돌려들었다. 그의 전설적인 데뷔작 '싸구려 커피'와의 첫 만남은 그리도 강렬했다.

 장기하의 등극은 마치 '박정희 쿠테타'와 같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 "장기하 너만 잘나가냐!" 라는 어색한 질투

이건 국악인가 랩인가 시낭송일까?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그의 첫 인사는 그렇게 EBS '공감', '쌈지숨은고수찾기', MBC '라라라', '그랜드민트페스티발' 등 거의 모든 국내 무대를 순식간에 장악하고 나섰다. 누군가는 "흡사 박정희의 쿠테타같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실력으로 볼 때 완벽한 음악인은 아니다. 언젠가 그는 배철수가 진행하는 코너에 등장해 "머리로 음악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단번에 드러나는 특징이 바로 그의 영민함이다.

실제 그의 음악편력을 훑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시절부터 많은 음악을 들어봤거나 공부한 느낌보다는 식성에 맞게 편식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감추거나 메우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음악을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

장기하의 음악은 70~80년의 리듬과 멜로디에 전 국민이 치고 부를 수 있는 수더분한 가사와 리듬을 장착한 듯하다. 별반 독특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기타와 드럼, 여기에 기타를 받쳐주는 베이스까지, 장기하의 읊조림을 제외하면 이것이 그의 음악의 전체적인 견적이다.

빼어놓을 수 없는 점은 비빔밥에 양념 고추장 같은 그 치밀한 무대연출일지 모른다. 게다가 인디밴드에서 보기 힘든 안무팀 '미미시스터즈'를 올린 것도 참신한 시도다.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든든한 배짱까지 갖췄다.

 그는 전혀 새로운 외계인이 아닌 우리 인디계가 쌓아온 역량의 성과다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 그리고 그리움

불과 1년 전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은 소수를 위한 매니아 성격이 짙었다. 기존의 주류 음악시장에서는 따라잡기 어려운 감성이었고,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불나방 스타 쏘세지클럽'과 같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운 강자에 비해 내세울 것이 없는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당시 신해철의 한 시간 라디오 방송에 무려 세 번이나 그의 음악이 방송됐을 정도의 매력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말대로 이제는 인디음악이 폭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것일까?

필자는 그의 음악이 대중의 변화된 감수성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고 본다. 30대만 돼도 TV 속 이야기나 신문지상의 글들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게 다가온다. 20대의 인간관계 역시 계산적이 됐다. 그 나이면 이미 화려한 성공보다는 일상적인 행복을 꿈꾸기 시작한다. 청년 백수가 증가하는 이즈음 '눈뜨고 코베인'이란 곳에서 7년의 시간을 뒷자리에서 드럼만 두들겨댔던 장기하가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매일매일 즐겁다"고 박차고 나선 것이다.

얼마 전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함께 출연해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 나는 그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정말 없었는지'를 직접 옆자리에서 듣자 묘한 울림과 그 음악 안에만 있는 에너지의 충만함을 경험했다.

영국 어느 지하 펍(pub)에서 나오는 그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기 힘든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호감을 갖게 만들 천진난만함과 똑똑함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리숙한 광대 같은 그의 언변과 상상초월의 무대연출은 얼마 전에 성황리에 마친 그의 1집 마무리 콘서트에서 여지없이 증명됐다. 수 백석을 가득 메운 6일간, 시작부터 요란한 그의 무대 연출은 하나하나 계산된 행위였고 성실한 무대 매너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근사했다. 그가 주장하는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선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다

이름 하나 제대로 알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지 음악인들은 뼛속 깊이 체감한다. 그 허례의식의 일부인 인터넷 검색에 등장하는 것도 한두 명 혹은 일이백 명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단지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엔 '장기하와 얼굴들'을 둘러싼 내공이 너무 두텁고 지지자들의 사기 또한 충천하다.

게다가 그의 등장은 인디 음악의 부흥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70년대 '산울림'의 '아니벌써', 90년대 '서태지'의 '난 알아요'. 모두가 그 시대의 파격적인 해머질이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등장은 그 만큼의 파격은 아닐지라도 다시금 그런 충격이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다.



혹은 DJ 배철수의 표현대로 "우리 때보다 더 머리를 안 쓰는 현재의 음악인들에게 일타를 먹였다"는 것이 그에 대한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자기가 좋아하는 만큼만 하면서 좌충우돌하던 많은 창작가들에게 장기하란 "너희들의 현실은 너희가 만든 것"이라는 깔끔하고도 냉철한 답변을 내린 것이다.

결국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할 수 있으려면 정책 지원보다는 음악인이 그 방법과 대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아마도 장기하는 7년간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통해 그 답을 도출했는지 모른다. 무대의 작은 동선까지도 치밀하게 설계하고 자신의 음악의 쓰임새에 대해 철저히 연구함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을 내어 놓은 것.

물론 아직은 이들의 속내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의 인디 음악계는 이 치밀한 20대 음악인들에게 큰 혜택을 입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거꾸로 주류음악보다 더 큰 경쟁자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디계 서태지의 등장에 우리는 격려를 보내고 힘찬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인디 음악 전체가 부활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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